16 Jun, 2005

영혼의 푸른 버스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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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다소 길므로..
그러나 인내하고,혹 읽으신 글이라도 한번 더..^^*
~*~*~*~*~*~*~*~*~*~*~*~*~*~*~*~*~*~*~*~*~*~*

라니켓으로 가는 버스는 이미 만원이었다..
내 옆에는 이마에 붉은 점을 친 힌두교 남자가 서있다.
그는 내가 차를 올라탄 다음부터 한 순간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커다란 두 눈이 마치 나를 찌를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인도인은 얼굴이 아니라 영혼을 본다는 말이있다.
그리고 인도인은 중간에 시선을 돌리는 법 없이 사람을 끝까지 쳐다보는 것
으로 유명하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이 인도인 역시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나를 쳐다보기로
작정한 듯 싶었다..
이런 경우에는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만큼 난감하다..
갈이 쳐다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어색하다.

  탈 사람이 다 탔는지 이윽고 버스가 출발했다. 금방 부서져 버릴것같은
차체는 그 안에 탄 온갖 희한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동화의 세계로 인도하듯
숨을 몰아쉬며 히말라야 기슭으로 내달렸다.  
그러다가 버스는 몇 사람을 더 태우기 위해 코딱지만한 어느 마을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영영 출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날은 덥고, 사람들 한복판에 끼어있으니 인도인 특유의 카레 냄새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게다가 바로 옆에서는 힌두교인 남자가 차가 달리든 말든 나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만 버스를 내리고 싶었지만 그 작은 마을에 여인숙이 있을 성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세시간을 더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런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마을에 멈춰 선 버스는 도무지 떠날 기미가
안 보였다. 검문을 받는 것도 아니고, 차가 고장난 것도 아니었다.
버스는 그렇게 30분이 넘도록 마냥 서 있었다.

하지만 승객들은 아무도 불평을 하거나 이유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해가 안가는 일이었다. 나는 지금 아름다운호수가 있는 북인도 나이니탈
에서 이틀을 머물고 더 북쪽의 라니켓으로 가는 중이었다.
버스 안에 있는 외국인은 나 뿐이었다. 그리고 버스가 떠나지 않는 것에
고통받는 사람도 나 혼자뿐인 것 같았다.

한 시간이 지날 무렵 나는 그만 인내심을 잃고 말았다.  달리는 만원버스
안에서도 한 시간은 긴 시간인데 찌는 날씨에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멈춰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어딜가나 이런 상황이니 나라가 발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구한테랄
것도 없이 큰 소리로 물었다.

" 이 버스 왜 안 떠나는거요~?"

그러자 버스 안에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쏠렸다.  
아무도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힌두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화가나서 소리쳤다.

" 버스가 한 시간이 넘도록 서 있는데 당신들은 바보처럼 기다리기만 할
겁니까~? 이유가 뭔지 알아봐야죠~!! "

그러자 그때까지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던 그 힌두인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운전사가 없으니까요. "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운전사는 그곳에 도착한 순간 어디로 사라졌는지
코빼기조차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바라는 답은 그런 멍청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마치 그 힌두인 때문에 버스가 움직이지 않기라도 하는듯이 따져 물었다.

" 그럼 그 운전사가 어디 갔는지 밝혀내야 할 것 아닙니까? 갑자기 배탈이  
나서 쓰러졌는지, 아니면, 옛날 동창생이라도 만난 겁니까? "

그때 더욱 화를 돋우는 대답이 앞쪽에서 들려왔다.

" 맞아요, 운전사가 친구를 만났어요. 둘이서 저쪽 찻집으로 갔어요."

나는 기가 막혀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 콩나물 시루 같은 곳에 사람
들을 가둬놓고서 친구와 함께 노닥거리고 있던 말인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그가 왕이라도 되는 것처럼 불평 한마디 없이
무한정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되는 얘기였다. 아무리 인도라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심했다.
나는 당장 내려가서 운전사를 메다꽂고 싶었다.
그때 그 힌두인 남자가 내게 물었다.

"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는 중입니까?"

나는 화가나서 라니켓으로 가는 길이라고 무뚝뚝하게 말했다, 더 이상 그와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가 또 묻는 것이었다.

"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갈 예정입니까? "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 엉뚱한 인도인의 호기심에 말려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퉁명스럽게 내밷았다.

" 그 다음엔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거예요. 그래서 뉴 델리로 들렀다가
며칠 뒤 우리나라로 돌아갑니다.  이제 됐습니까? "
" 그럼 그 다음엔 또 어디로 갑니까? "
" 그거야 아직 모르죠. 또 인도로 올지도 모르고, 네팔로 갈 수도 있고.  
하지만 오늘 라니켓 에 도착하는 것조차 불확실한 마당에 나중의 일을
어떻게 안단 말이요!? "

그러자 그 힌두인은 침착하게 말했다.

"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서둘러 어딘가로 가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

나는 말문이 막혔다. 곁에 서서 한시간이 넘도록 내 영혼을 꿰뚫어 본
이 남자는 대체 뭘하는 사람일까?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버스는 떠날 시간이 되면 정확히 떠날
겁니다.  그 이전에는 우리가 어떤 시도를 하여도 신이 정해놓은 순서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조용히 덧붙였다.

" 여기 당신에게 두가지의 선택이 있습니다.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마구 화를 내든지,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해도 마음을 평화롭게 갖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당신이 어느쪽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니 왜 어리석게 버스가 떠나지 않는다고 화를 내는 쪽을 선택하겠
  습니까~? "

나는할 말을 잃었다.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바보들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문득 남루한 인도인들로 변장한, 인생을 초월한 대철학자들 사이에
서 있는듯한 느낌이들었다.

로마의 대철학자 에픽테투스는 말했다.

" 자신이 원하는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하고 좋은 것들은 좋은 것
  대로 가게 하라. 그때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에픽테투스는 원래 노예였다고 한다. 그의 주인은 그를 늘 학대했는데,
어느 날 주인이 심심풀이로 에픽테투스의 다리를 비틀기 시작했다.  
에픽테투스는 조용히 말했다..

" 그렇게 계속 비틀면 제다리가 부러집니다."

주인은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계속 비틀었고 마침내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자 에픽테투스는 평온하게 주인을 향해 말했다고 한다.

" 거 보십시오, 부러지지 않았습니까?"

그날 그 낡은 버스 안에서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감정의 흔들림이 없이
현실을 수용할 줄 아는 수 많은 에픽테투스들을 만난 셈이었다.
마침내 나타날 시간이 되자 운전사는 미안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타났고,
떠날 시간이 되자 버스는 떠났다. 그리고 나는 수천년 전부터 예정된 시간에
정확하게 라니켓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삶이 정확한 질서에 따라 진행되고
있는데, 내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한두시간 쯤 늦었다고 해서 불평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일을 받아들이는 넉넉한 마음을 지닌, 영혼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사람
들을 싣고 버스는 7천8백미터의 난다 데비 히말라야의 품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
사람 사는 일이 쉽지가 않습니다.
더우기.. 계획하고 원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한없이, 한없이 기다려 할 때..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 앞이 막힐 때..
슬픔과 분노와 짜증과 열냄과 모든 부정적인 단어를 사전에서 솎아내어
앞에 늘어놓은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저는 글을 키보드에 치는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다..
손가락 연습도 한 일이 없고 그저 몇개만 가지고 마구잡이로 치지요.
그러다보니 자판을 보고 쳐얄 때가 많아서 한참 하다보면 눈이 빙빙 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글을 치는 것은.. 이 글에서 보듯이 나 스스로를
참아내는 훈련을 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고..
오늘 만나는 여러 인연들에서..내 시간표를 부득불 주장하기 보다
한번 쯤.. 관망하는 여유로 하루를 보내셨슴 좋겠습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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