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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메모에 대한 책을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특가도서란에서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띄었다. <메모의 기술>. 만일 읽게 된다면 "메모"에 대해서는 반드시 일본사람이 쓴 책을 선택한다는 다짐도 해두었던 터라, 가장 먼저 저자의 이름에 눈길이 갔다. <사카토 켄지>

 

도요타를 비롯해 세계적으로도 굵직한 인상을 주는 일본기업의 성공 원인을 분석할 때, 원인을 몇 가지로 좁히든, 누가 분석을 하든, 분석하면서 밥 먹고 살 수 있는 주류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절대 '그들의 메모'에 대한 이야기를 빠뜨려서는 안 될거라고 생각해왔던 정도로 일본은 메모의 강국이라고 확신해왔기 때문에, 일본인이 쓴 책이 아니었다면 굳이 구입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 신청이라 남의 말만 듣고 산 불안함은 '무엇인가를 기억하기 위해 늘 고심하는 사람보다는 무엇인가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한다.'며 기록하고 잊어버리라는 머리말을 읽고 사라졌다. 그때의 느낌이란 '찍었던 시험문제가 오답이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시험이 끝나고 정답이었다고 확인했을 때의 기쁨과 안도감에 빗대어 볼 수 있었다.

 

가끔 기분좋은 꿈을 꾸게 되는 날은 꿈에서 깨어난 순간, 이 꿈으로 인해 오늘 하루가 한없이 즐거울 것 같은 달콤함을 맛본다. 깨어나 쉽사리 잊혀져 버리는 꿈과 달리 스토리 전개까지 또렷히 기억한다. 그러나 당장 일어나는 분주함 속에 양치질 하다가 그 달콤함에 대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 경험들. 꿈이 얼마나 달콤했는지 뽑아든 모닝커피조차 너무 쓰게 느껴졌는데, 그 꿈은 다시 기억할 수 없는 아쉬움이 되어 버렸다.

 

꿈 뿐만 아니라 이 곳에 쓰는 생각들도 머리속에 떠올랐을 때는 물 흐르듯 막힘없이 줄줄스런 부드러움이 있었던 것 같은데, 자리로 돌아와 당장 적어보고자 할 때는 기억나지 않거나, 한 문장을 넘어선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러다보니 그 기억이 무엇이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낭비 시간도 적지 않았다.

 

나는 다이어리에 메모를 하긴 했지만, 계좌번호나 신용카드번호, 친인척 전화번호, 생년월일, 윈도우 설치 시디키, 각종 소프트웨어 시리얼번호, 기타 지표 등 숫자에 관해서는 기억에 무조건 의지하려 했었고, 나름대로는 그 기억력이 나를 대변해주길 바랄 때도 많았다. 그러다가도 중요한 무엇인가를 잊어버리거나 빠트린 상황을 직시하게되면 "메모"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란.. 아까도 커피먹고 돌아오는 길에 떠오른 꽤 발칙하고 유쾌한 생각을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잊어버렸다.

 

그 밖에도 형이상적인 것을 형이하적인 것으로 구분해나가는 능력을 키우는데 있어서도 메모 습관은 큰 도움이 된다.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인생 자체가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과 '내면 세계를 정비하는 일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생각에 동감하며, 자신의 감정을 메모해보는 것이 어떠어떠한 형이하의 것들에서 어느 정도로 내가 객관적인지 비추어보기 쉬운 괜찮은 방법 중의 하나인 것 같다고 생각된다.

 

여담이지만, 공감하는 이의 가슴에 숨쉬는 동심,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도 작가가 10살 정도에 두 세줄 적어두었던 해묵은 메모에서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메모합시다~!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