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Jan, 2008

안현미 - 비굴레시피

보시리 조회 수 7734 추천 수 0 목록
□□□□□□□□□□□□□□□□□□□□□□□□□□□□□□□□□□□□□□

   비굴레시피

   재료  

   비굴 24개 / 대파 1대 / 마늘 4 알
   눈물 1큰술 / 미증유의 시간 24h

   만드는 법

   1. 비굴을 흐르는 물에 얼른 흔들어 씻어낸다.
   2. 찌그러진 냄비에 대파, 마늘, 눈물, 미증유의 시간을 붓고 팔팔 끓인다.
   3. 비굴이 끓어서 국물에 비굴 맛이 우러나고 비굴이 탱글탱글하게 익으면 먹는다.

   그러니까 오늘은
   비굴을 잔굴, 석화, 홍굴, 보살굴, 석사처럼
   영양이 듬뿍 들어 있는 굴의 한 종류로 읽고 싶다
   생각컨대 한순간도 비굴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므로
   비굴은 나를 시 쓰게 하고
   사랑하게 하고 체하게 하고
   이별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고
   당신을 향한 뼈 없는 마음을 간직하게 하고
   그 마음이 뼈 없는 몸이 되어 비굴이 된 것이니
   그러니까 내일 당도할 오늘도
   나는 비굴하고 비굴하다
   팔팔 끓인 뼈 없는 마음과 몸인
   비굴을 당신이 맛있게 먹어준다면


□□□□□□□□□□□□□□□□□□□□□□□□□□□□□□□□□□□□□□


비굴이 어때서.
비굴이야말로, 간월도 토화로 빚어진 어리굴젓만큼이나 영양가 높은 것 아니던가요.
세상을 꿰뚫어보게 하고, 삶의 흐름에 비위 맞추는데, 가늘고 길게 사는데 도트게 해준.
그 비굴로 인하여 더듬이가 자라고 어두움 가운데서도 빛나게 예민한 촉각을 키우게
되었는걸요.

세모에, 선물로 만나게 된 안현미시인의 글은 오늘도 탱글탱글한 비굴 안에서 제조된 거짓말을
내 안으로 격렬하게 타전해오고 있습니다.
이 '탱글탱글한' 표현을 그의 시에서 읽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갑자기 빨라진 맥박에,
전생에 잃어버렸던 호패戶牌라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비굴하게도. 하하.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90 고정희 - 상한 영혼을 위하여 [3] 보시리 2005-02-19 19970
89 고정희 - 사랑법 첫째.. [3] 보시리 2005-02-21 6861
88 양애경 -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보시리 2005-02-22 6515
87 도종환 - 폐허 이후 머시라고 2005-02-23 10618
86 남유정 - 마음도 풍경이라면 보시리 2005-02-27 6453
85 안도현 - 눈 그친 산길을 걸으며 [1] 머시라고 2005-03-03 7421
84 이정하 - 그런 날이 있었습니다 [1] 머시라고 2005-03-08 7293
83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1] 머시라고 2005-03-24 7066
82 최옥 - 그대에게 닿는 법 보시리 2005-04-12 6220
81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12] 보시리 2005-04-21 59653
80 백석 - 나 취했노라 file [1] 머시라고 2005-04-26 14838
79 류시화 - 패랭이 꽃 [4] 보시리 2005-05-08 15275
78 백석 - 멧새 소리 file 머시라고 2005-05-09 13705
77 도종환 - 우기 보시리 2005-05-09 25165
76 안도현 - 제비꽃에 대하여 [1] 보시리 2005-05-12 7075
75 박노해 - 굽이 돌아가는 길 보시리 2005-05-14 18893
74 류시화 - 나비 [2] 보시리 2005-05-20 8901
73 박우복 - 들꽃 편지 file 보시리 2005-06-10 16017
72 나희덕 - 오 분간 머시라고 2005-06-18 12192
71 김옥림 -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4] 머시라고 2005-06-23 27182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