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Apr, 2004

한용운 - 님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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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회동서관,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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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받은 고정관념처럼 '님'을 '조국'이라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그래서 나는 '님'을 '님'이라고 단정지어 부르지 못했던 생각을 떨치려 한다.

'첫 키스'와 '첫키스'는 그 공백 하나로 다른 의미처럼 느껴진다.

녹아내리듯 온 몸이 빨려들어가는 첫키스와 함께 나는 겁을 먹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황홀을 맛보거나 감동한다는 것은
또 다른 사람의 희생과 노력으로, 만족하려는 배려로 가능하다 믿어왔던 내게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함께 황홀하다는 공감의 느낌을 멀게하고
님이 느껴야할 키스의 달콤함을 내가 독식해버린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했다.

감동은 Win-Win 이라기보다 Zero-Sum 이라 생각해 왔던 것이다.

님이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 사라졌다던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말할 때, 그 곳에 내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의 갈등과
나의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이 나만의 것이 아니었을까 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공감하고 있을까,, 말했다가 괜히 더 멀어져버리진 않을까 그런 고민은 말아야겠다.
자신의 느낌에 솔직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새 희망의 정수박이를 찾아야할 날에도 솔직하지 못하고 있을 때
님이 먼저 나도 공감하고 있던 것을 찾아내 말해 버린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도 그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 JM - 슬픔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네멋대로해라 OST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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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