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Oct, 2008

김경주 - 드라이아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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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이아이스

  사실 나는 귀신이다 산 목숨으로서 이렇게 외로울 수는 없는 법이다 *

  문득 어머니의 필체가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리고 나는 고향과 나 사이의 시간이
  위독함을 12월의 창문으로부터 느낀다
  낭만은 그런 것이다
  이번 생은 내내 불편할 것

  골목 끝 슈퍼마켓 냉장고에 고개를 넣고
  냉동식품을 뒤적거리다가 문득
  만져버린 드라이아이스 한 조각,
  결빙의 시간들이 피부에 타 붙는다.
  저렇게 차게 살다가 뜨거운 먼지로 사라지는
  삶이라는 것이 끝내 부정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손끝에 닿는 그 짧은 순간에
  내 적막한 열망보다 순도 높은 저 시간이
  내 몸에 뿌리 내렸던 시간들을 살아버렸기 때문일까
  온몸의 열을 다 뺴앗긴 것처럼 진저리친다
  내 안의 야경을 다 보여줘버린 듯
  수은의 눈빛으로 골목에서 나는 잠시 빛난다
  나는 내가 살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 순교할 것이다
  달 사이로 진흙같은 바람이 지나가고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들어가고 있다
  귀신처럼

* 고대시인 침연의 시 중 한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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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약품이 배달 올 때 어느 제품은 드라이아이스통에 담겨서 옵니다.

<요주의. 맨 손으로 만지지 말어랑~!!!>

경고문이 있지만, 경고도 오래되면 그냥 통의 일부로 인식될 뿐,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합니다.
그래도 조심을 하지만 어느 바쁘던 날, 급하게 통을 열고 약품을 꺼내다가
비닐에 어설프게 대충 싸놓은 드라이아이스를 만진 일이 있습니다, 쩌억~!!!
몽환적인 마른 안개 속으로 자석에 끌리듯 끌려갔습니다..
소스라치며 손을 털었습니다.. 그건 마치,
사악한 음공의 고수에게 붙잡혀 기가 솨악~ 빨려들어가는, 그런 무엇이었습니다, 아니..
아즈카반에서 반란을 일으킨 디멘터에게 붙잡힌 뭐, 그런? (해리 포터) ^^
뽀르륵 골이 나서 통채로 잡아다가 세면대에 털어넣고 물을 틉니다, 곧..
희디흰 안개가 세면대를 타고 기어나와 바닥을 헤집고 퍼집니다, 음산하게, 귀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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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라고

October 26, 2008

현관을 나설 때 마주한 공기의 사연이 그거였네요.
 천천히 오늘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 공기들이
 동상을 입은 채 집집마다 흘러들어가고 있다

골이 나서 그러셨다니 참ㅋㅋ. 지니 비슷한 뭔가가 안 나타나던가요?
귀신도 외로움을 탈까요? 어떻게 달랠까요.
출발할 때 자동차 계기판의 경계표시를 잘 확인해야 하는데 깜빡할 때가 있네요.
핸드 브레이크 걸린지 모르고 몇 킬로미터 갔더니
하늘을 나는듯 뒷바퀴 쪽에서 연기가 구름처럼... 물에 빠진 드라이아이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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