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Sep, 2007

이성복 - 물가에서

머시라고 조회 수 16761 추천 수 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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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서

 그날 아침 물살은 신기하게도 빨랐습니다 우리는 채 깊지 않은 물가에서 얼굴을 씻고 머리 감았습니다

  점심때 나와보니 우리 놀던 물가에 인적 끊기고 물길 휘돌아 깊어진 곳에 자욱이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물 가운데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나룻배는 죽음이었습니까, 죽음의 그림자였습니까

 시신을 찾지 못한 나룻배는 다시 사람들을 실어나르고 한쪽 물가에선 방금 도착한 사람들이 물장구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름의 끝』, 문학과지성사(1990: 개정판 1994),
                      41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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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생활이 시작되던 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버지께서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지 못하신 게 안타까웠던 걸까,
앞으로 빡세질 것 같은 내 삶에 대한 걱정이 더 컸던 것일까.
나의 괴성은 후자의 영향이었던 것 같다.
그 동안의 병수발과 앞으로 혼자서 가족을 이끄실 어머니에 대한 측은함도 없었던 것 같다.
신이 있다면, 그는 나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려고 이럴까 싶었다.
어떤 형태로든 다음 생이 있다면, 아버지는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계실까.

오래 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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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