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Jan, 2008

천양희 -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보시리 조회 수 6941 추천 수 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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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
    어떤 날은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막무가내로 올라간다
    고비를 지나 비탈을 지나
    상상봉에 다다르면
    생각마다 다른 봉우리들 뭉클 솟아오른다
    굽은 능선 위로
    생각의 실마리들 날아다닌다
    뭐였더라, 뭐였더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의 바람소리
    生覺한다는 건
    生을 깨닫는다는 것
    생각하면 할수록 生은 오리무중이니
    생각이 깊을수록 生은 첩첩산중이니
    생각대로 쉬운 일은 세상에 없어
    생각을 버려야 살 것 같은 날은
    마음이 종일 벼랑으로 몰린다
    생각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
    생각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
    생각 때문에 밤새우고 생각 때문에 날이 밝는다
    생각이 생각을 놓아주지 않는다
    지독한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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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깊었던 날이 있었습니다.
출근을 하고 있었는데, 100미터 전방조차 아름아름하여, 쌀뜨물에 빠진 것 같았습니다.
복잡한 생각에 휩싸여, 도무지 결정을 할 방법은 보이지 않고, 방법의 실마리를 찾아 생각에
골똘하며 차를 몰고 있었습니다.

저 안개만 없었더라면, 이 생각을 가두고 있는 안개만 없었더라면,
조금이라도 앞 일을 알 수 있더라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알 수 있더라면.
그리고.. 믿지 않았더라면.

오래 전에 나누어 준 호의가 나를 묶는 올무가 되었고, 다시 날선 칼이 되어 돌아온 후,
그 칼날을 잡는 것이 좋은지, 칼을 돌려 겨누는 것이 좋은지가 한없이 망서려져 잠을 이룰 수 없던 밤을 보내고, 내 머리속 만큼이나 뿌연 안개 속을 달려가면서, 이것이 생각을 위한 생각은 혹시 아닌가하고 헛웃음을 지었습니다.
생각을 버리면 안된다는 생각, 그리고 생각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지쳐버렸습니다.

생각을 안 하면 안될까. 선택을 안 하면 안될까.

생각은 다가올 후회를 덜기 위한 노력이고, 주변에 흩어놓은 자신의 조각들을 들어올려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있는 삶이라는 퍼즐녀석을 맞추는 단계입니다.
그래서 생각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먼 훗날, 오늘 했던 이 생각의 고통이 그래도 잘한 짓이었다고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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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라고

February 10, 2008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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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리

February 11, 2008

예.. 벌써부터 그렇습니다.

긴~~~생각, 또 긴 ~~~고민 및..예상되는 여러 가상결과를 그려본 끝에 결론을 지었고
마무리를 마쳤습니다.
생각이 길었던 것은 마무리 할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 기회를 주어야 했던 것이 아닐까, 더 기다려 주었어야 한 것은 아닌가..를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결론으로, 어쩌면 자의적으로 문제 해결의 의지를 일으킬 수 없는 경우에는
타의로라도 마무리를 지어주는 것이 어쩌면 상대방이 다른 문을 열게 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후담으로는, 그 마무리 후에 그 상대방이 또 다른 일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인데, 이미 마음 속으로 여러 상황을 그려보았기 때문에 그다지
심정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일이 잘 끝났다'는 것은 더 이상 피해가 크기 전에 마무리를 지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많~~~~이 생각하고 고민하여 결론내었던 것이라서 이 일에 대한 뒷 여운이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믿음에 대해 일이 잘못될 수 있지만, 그것은 믿음의 잘못이 아니라
이 일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믿음의 결과로 오는 일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더라도
사람 믿는 일의 소중함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암튼..

이렇게 5 년을 넘겨가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했던 일들.
많~~~~은 생각들은, 시간이 더 지나서 또 이 일을 돌아볼 때에라도, 나 자신에 대한
후회는 적게, 적게 줄여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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