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Aug, 2007

최문자 - Vertigo 비행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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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ertigo 비행감각

  계기판보다 단 한 번의 느낌을 믿었다가 바다에 빠져 죽은 조종사의 이야기를 알고 있다.
그런 착시현상이 내게도 있었다. 바다를 하늘로 알고 거꾸로 날아가는 비행기처럼, 한쪽
으로 기울어진 몸을 수평비행으로 알았다가 뒤집히는 비행기처럼 등대 불빛을 하늘의
별빛으로, 하강하는 것을 상승하는 것으로 알았다가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그가 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모든 세상의 계기판을 버리고 딱 한 번 느낌을 믿었던
사랑,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었다. 궤를 벗어나 한없이 추락하다 산산이 부서지는 일이었다.
까무룩하게 거꾸로 거꾸로 날아갈 때 바다와 별빛이 올라붙는 느낌은 죽음 직전에 갖는 딱
한 번의 황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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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속으로 1997년 여름에 방영했던 <모델>을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요, 남들 다 볼 때 안보다가 (당시에 인구에 뜨겁게 회자하던 이 드라마를 분명히
잘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유를 알 수 없는, 근거없는, 선입견에 충만한 반발감으로 인해
안 봤던 걸로 기억됩니다..) 또 이유를 알 수 없는 순간적 충동으로 보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쟁쟁한 출연진들. 장동건, 한재석, 김남주, 염정아, 하유미, 정동환, 송선미, 이선진,
소지섭(어리버리 신인 ^^) 그리고 장혁(더 어리버리 꽥꽥이 ^^*)..와아~

이제 36회분 중 30회를 볼 차례입니다.
갈등은 더욱 첨예해지고, 한 걸음을 더 보탤수록 그리도 간절하게 줄이고 싶은 간격은
폭우 속의 흙더미를 기어오르는 것처럼 나락속으로 미끌어지기만 합니다.

이 정과 송경린은 나방이 불꽃을 향해 뛰어들듯 그렇게 스스로를 소각해가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시청진도를 잠시 정지시키고, 그들이 선택할 길, 아니, 작가의 권력을 잠시 빌려서
그들의 운명을 점지해봅니다. 흠~.. 전능자 시점이라면 난 과연 어떻게 풀어가겠는가..

이 드라마에서는 무엇보다, 개성있고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어 마음에 듭니다.
극단적인 善, (거의) 절대적인 惡. 그리고 그 사이에 수시로 노선을 갈아타며 부화뇌동하는
대부분의 인물들.
자신의 색깔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사람냄새 속속드리 풍기는 그 간편한 본능.

가장 맥빠지고 재미없는 결론은 관객에게 아부하는, 꽃가루 속의 에브리바디 해피엔딩입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상응하게 잃는 것이 있기 마련. Price to pay.
파워풀한 임팩트로 터뜨려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면서 관객이 수긍할 만한 결론이란~?

작가의 마인드와 얼마나 비슷할까를 배팅해보는 것, 암튼, 참 재미있고 즐거운 일입니다. ^^


..등대 불빛을 하늘의 별빛으로,
하강하는 것을 상승하는 것으로 알았다가 추락하는 비행기처럼
그가 나를 고속으로 회전시켰을 때 모든 세상의 계기판을 버리고
딱 한 번 느낌을 믿었던 사랑,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었다..

추락이라고 되돌이켜지는 그 비행.. 그러나, 그 순간에만은 얼마나 치열한 절실이었던가.

그때 이 드라마를 보지 않고 이제까지 기다렸다는 것이 참 다행입니다.
그만한 시간의 꾸러미가 풀려나가는 동안.. 삶은 나의 안에 다른 눈을 또 심어주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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