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Apr, 2007

유지소 -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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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늪이 있다

그 늪에는
사랑과 용서라는 수초만 꽃을 피운다

내 음성이 "너 · 무 · 해" 하고 너를 향해 돌진하는 순간 내가 사라져버렸다
왜냐하면, 동시동작으로, 내 마음이 "너 · 無· 해" 하고 단호하게 너를 삭제해 버렸거든

그 때, 기우뚱거리는 몸을 나무에 기대지 말았어야 했어
나무가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쿡쿡, 나를 <나 · 無>로 인식했거든 나도 삭제되고 말았어

너도 없고,
나도 없고,
나무만 있었어

천 개의 혓바닥이 새파랗게 질려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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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많은 말들 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에 얽매인 때가 있었습니다.

기쁘고,노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는 일들이 결국은 모두
내 안에 고립된 일들이라서, 내 안의 상처를 지우려하기 보다는
그 상처를 견고한 스승 삼아 쓰다듬자고.. 그렇게 중얼대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이 모 그리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힘들이고 공들여 해왔는데,
그것이 결국은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고싶다는 그런 말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삭제.
지워버림.
아예, 존재 자체를 없애버림.

그것이 주는 어두운 force는 절대적입니다.
삭제. delete.

<오디션> 작가, 천계영님의 작품 중 DVD - 땀과 비누와 디디 이야기라는,
SF 환타지같은 만화가 있습니다.
The Sixth Sense를 연상할 정도로, 완전히 횡설수설, 혼돈 속으로 휘몰아가
끝내 예상치 못한 결말과 풀이에 크아~~! 를 연발했던 작품인데, 거기서
<친절한 삭제>의 개념을 잘 보여줍니다.

톡톡톡~,
이렇게 손가락으로 두드리면 환상은 사라집니다.

삭제.
온 곳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

그러나, <너 無 해>의 비명은 그렇지 못한 모양입니다.
너를 지우는 동시에 나를 지움.
그러므로 나를 지우지 않기 위해 너를 지울 수 없음.
그래서 입 속에 머문 채, 나올 수 없는 그 슬프고 미운 말은 화석이 되어버립니다.

문득, 어느 기념품 가게에서 보았던 노오란 호박琥珀 이 생각 났습니다.
작은 날벌레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얼마만한 시간이 흐르면 내 속에 머문 채 빼내주지 않았던 미운 말들이
호박 속의 모기같이 그저 짠~ 한 추억으로 남을까..가 뜬금없이 궁금해졌더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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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