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pr, 2007

박제영 - 가령과 설령

보시리 조회 수 15384 추천 수 0 목록
□□□□□□□□□□□□□□□□□□□□□□□□□□□□□□□□□□□□□□

가령과 설령

가령
이것이 시다, 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 라고 쓰여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고지식하고 유도리없는 雪嶺 을 찾아가려고 맥없이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허공을 떠다니는 무수하고 확실한 의지의 단어들이 모두 길잡이였습니다, 가령..
그리움이라든지, 가령 사랑이라든지, 가령 믿음이라든지.

그 가령佳嶺 조차도 설령으로 가는 길 어느 중간에 진치고 있을 줄..알기나 했나요, 어디.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설령.. 그곳을 오르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헛돌았습니다.
그 설령雪嶺 에도 봄이 온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카이의 심장에서 얼음이 녹고, 눈의 여왕 궁전 앞뜰에 버드나무가지 일렁이는
그런 < 그리 아니하실지라道 >를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10 도종환 -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박찬민 2003-04-12 9721
109 김용택 - 그 강에 가고 싶다 file 보시리 2007-05-30 9695
108 안도현 - 너에게 묻는다 file 머시라고 2003-04-05 9588
107 정호승 - 사랑한다 [1] 박찬민 2003-05-10 9528
106 이문재 - 거미줄 [1] 박찬민 2003-06-03 9521
105 정현종 - 섬 [2] 머시라고 2003-04-02 9514
104 신경림 - 갈대 머시라고 2003-04-02 9438
103 류시화 - 소금 인형 [3] 보시리 2005-01-05 9435
102 프로스트 - 가지 않은 길 [1] 머시라고 2003-04-02 9415
101 안도현 - 그대에게 가는 길 머시라고 2005-12-24 9025
100 신달자 - 불행 보시리 2007-06-03 9012
99 김정란 - 눈물의 방 보시리 2014-05-05 9011
98 류시화 - 나비 [2] 보시리 2005-05-20 8900
97 나호열 - 비가 후박나무 잎을 적실 때 보시리 2010-01-16 8798
96 정호승 - 또 기다리는 편지 머시라고 2003-04-02 8725
95 정호승 - 내가 사랑하는 사람 file [3] 머시라고 2004-05-15 8724
94 문태준 - 思慕 file 보시리 2013-10-19 8667
93 김경주 - 드라이아이스 [1] 보시리 2008-10-25 8482
92 함석헌 -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1] 보시리 2005-01-13 8294
91 이성복 - 그리운 입술 머시라고 2006-01-01 8096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