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Jun, 2003

이문재 - 거미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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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미줄 ]

거미로 하여금 저 거미줄을 만들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다

거미로 하여금 거미줄을 몸 밖
바람의 갈피 속으로 내밀게 하는 힘은 이미
기다림을 넘어선 미움이다 하지만
그 증오는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어서
고요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팽팽하지 않은 기다림은 벌써
그 기다림에 진 것, 저버리고 만 것

터질 듯한 적막이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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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산 길을 걷는다.
자기가 만든 거미줄이 적외선 감지기라도 되는 냥 뽐내다가
이슬의 쌀쌀촉촉함에 발각된다.

이제는 물방울 머그믄 아름다움이라도 뽐내야 한다.

산행을 가로막는다.

어제 누군가 이 길은 걸었다면
거미줄이 나를 가로막지 않았을까?

어제 누군가 이 길을 걸었어도
주위 거미들이 귀뜸해주지 않았다면
누군가 겁없이 막아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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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흠

June 06, 2003

이슬의 쌀쌀촉촉함에 발각되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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