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Apr, 2008

황지우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보시리 조회 수 33639 추천 수 0 목록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
   자기 온몸으로 나무는 나무가 된다
   자기 온몸으로 헐벗고
   영하(零下) 13도(十三度)
   영하(零下) 20도(二十度) 지상(地上)에
   온몸을 뿌리박고 대가리 쳐들고
   무방비의 나목(裸木)으로 서서
   두 손 올리고 벌받는 자세로 서서
   아,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 영하(零下)에서
   영상(零上)으로 영상(零上) 5도(五度)
   영상(零上)13도(十三度) 지상(地上)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천천히, 서서히, 문득, 푸른 잎이되고
   푸르른 사월 하늘 들이받으면서
   나무는 자기의 온몸으로 나무가 된다
   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


□□□□□□□□□□□□□□□□□□□□□□□□□□□□□□□□□□□□□□


이상 기온의 봄입니다..

노랬다가 하얬다가. 밝았다가 흐렸다가. 달력의 봄은 꽃피우라고 소리를 지르는데,
말 잘 듣는 봄꽃들이 우르르 봄 속으로 나왔다가 된서리 맞고 죄~~감기에 걸린 판입니다.

내일은 슈베르트의 D장조 미사곡, 키리에/글로리아/상투스/베네딕투스/아뉴스데이..
전 곡을 불러야 합니다.. 수시로 High A를 넘나드는 높고높은 음에 질려서 아주 진저리를 치며
연습을 했습니다, 벌받은 몸으로, 벌받는 목숨으로/ 기립(起立)하여, 그러나/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魂)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 속으로/ (이글이글) 불타면서.

그러다가..
황지우 시인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으스러지도록 부르터지면서
터지면서 자기의 뜨거운 혀로 /싹을 내밀고
그러다보면, 그렇게 계속 하다보면.. 천천히, 서서히
아아, 마침내,끝끝내 우리도 그렇게 하얗~게 꽃피울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면 올 봄은 그렇게 하얀 꽃 떨치고 차려입은 나무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주 힘이 났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50 양애경 -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보시리 2005-02-22 6515
149 이정하 -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찬민 2003-07-23 6525
148 장정일 - 내 애인 데카르트 보시리 2007-05-17 6533
147 정호승 - 달팽이 [1] 머시라고 2004-03-11 6587
146 복효근 - 가시나무엔 가시가 없다 보시리 2009-02-01 6621
145 안도현 - 저물 무렵 file 머시라고 2004-06-19 6635
144 정호승 - 밤벌레 [1] 머시라고 2004-10-21 6654
143 이기철 - 유리(琉璃)에 묻노니 보시리 2010-02-19 6683
142 천양희 - 외딴 섬 보시리 2007-05-09 6700
141 한용운 - 떠날 때의 님의 얼굴 머시라고 2004-09-11 6704
140 박남수 - 아침 이미지 보시리 2007-04-30 6726
139 천양희 - 좋은 날 보시리 2007-05-21 6738
138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박찬민 2003-06-10 6825
137 김정란 - 눈물의 방 보시리 2007-06-01 6838
136 나희덕 - 사라진 손바닥 머시라고 2005-01-10 6848
135 고정희 - 사랑법 첫째.. [3] 보시리 2005-02-21 6861
134 홍윤숙 - 과객 file 보시리 2007-06-18 6869
133 천양희 -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2] 보시리 2008-01-21 6939
132 안도현 - 섬 [1] 보시리 2007-05-06 6960
131 김정란 - 기억의 사원 file [2] 보시리 2007-07-11 6963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