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현실에 몸을 두고 살기가 외로워 의자 위에 내 몸을 올려놓습
니다. 올려놓고 보니 불편한 의자입니다. 그리고 보니 의자도
현실입니다. 이번에는 의자를 몸 위에 올려놓아 봅니다. 무겁
습니다. 의자를 내려놓고 나 자신과 맞서보기로 합니다. 온갖
사실들이 기억의 창고에서 쏟아져나옵니다. 한동안 그것들과
도 맞서보지만 여전히 의자 하나 놓여 있습니다.

저 하늘엔 비행기가 갑니다.

그래서 외로운 나도 길을 나서봅니다. 우연도 필연도 아닌 길
을 향해 걷기 시작합니다. 내 좁은 경험을 벗어나 다른 길을 찾
아보기로 합니다. 혼자 가기가 심심하기는 하지만 큰 길을 따
라 강변까지 나갑니다. 이제 계단을 내려가면 강입니다. 오른
발 왼발. 강변에선 함부로 쓰레기를 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른
발 왼발. 나는 갑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고 합니다.

강변에 나와 바람을 쏘입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내 의식이 바
람 속에서 눈을 뜹니다. 내 몸은 풀밭에 누워 있습니다. 누워
있는 몸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바람을 쏘인 탓인지 의식이 자
꾸 가벼워져 몸 밖으로 새나갈 것 같습니다. 하나 둘. 새어나갑
니다. 새나가고 맙니다.
저 하늘엔 비행기가 갑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간다고
합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나는
잠시 여기서 멈춰 있으라고 합니다.



□□□□□□□□□□□□□□□□□□□□□□□□□□□□□□□□□□□□□□

지난 몇일은 계속 받는 인사의 연속이었습니다.
한국 사람이란다, 한국 사람이래.

말하는 사람은 그 사건 자체가 쇼킹한 것이고 그 사건의 장본인이
한국인이던, 중국인이던, 흑인이던, 히스패닉이던.. 별 차이가 없을 것이지만,
듣는 저로서는 그 떄마다 심장 언저리가 콕콕~ 쑤십니다.

기록에 남을.. 역사적인..

이런 수식어 뒤에 MASS MURDERER..라는 말로 마무리 되는 버지니아 슈팅 사건.
그, 조승희 군의 그 동안의 시간들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는 저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그가 전쟁을 치러왔다는 것은 짐작이 됩니다..

지독히 고독한 전투.

결과적으로 30 명이 넘는 생명의 희생을 내고 말았지만
그를 표현하는 단어들이 마음 아픕니다.

Extreme loner.
잘 섞이지 못하고, troubled 된.. 부적응자.
매스컴과 전문가들은 냉정하게 분석하여 말합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말이나 표현을 절대로 용납
못하고 모든 blame을 남에게 전가하는 특징이 있다고.
그러므로 불특정 다수에게 그 벌을 주기 위해 이런 일들을 벌인다고.

버지니아텍의 한국학생들의 반응은 혹 이번 일로 한국 교포사회가 앙갚음 당할 것을
우려한 목소리만 실려 있습니다.. 유감의 표현들은 다 어디 간건지..

결국은 마음의 짐을.. 못 이겨서 벌인 일이겠지요..
그가 일기에 써놓은 그 시뻘건 미움의 말들이 하나하나 일어나서 공격을 해옵니다.

우리는 마음의 흐름을 막을 엉킨 막다른 골목은 없는가..
흐르게 할 수만 있더라면, 그의 손을 잡아줄 손 하나라도 있었더라면..
하는 지독한 안타까움이 잠을 몰아내고 있습니다.

오른발, 왼발 내려서는 강변.
네 가는 길이 멀고 참 외로울텐데.. 나는 그저 여기에 멈춰서 있습니다.

삼가 모든.. 생명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50 김정란 - 말을 배운 길들 보시리 2008-02-25 16771
149 이성복 - 물가에서 머시라고 2007-09-16 16759
148 도종환 - 가을비 file [1] 머시라고 2004-11-01 16468
147 이정하 - 그를 만났습니다 박찬민 2003-04-09 16064
146 박우복 - 들꽃 편지 file 보시리 2005-06-10 16017
145 김재진 - 보일러 file [2] 보시리 2012-06-26 15933
144 류시화 - 목련 머시라고 2003-04-15 15931
» 박상순 - 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보시리 2007-04-19 15901
142 정끝별 - 그만 파라 뱀 나온다 [2] 보시리 2009-12-09 15877
141 나희덕 - 비에도 그림자가 머시라고 2005-01-31 15810
140 기형도 - 바람은 그대 쪽으로 file 보시리 2007-06-25 15793
139 이정하 - 사랑의 이율배반 file [1] 머시라고 2004-04-19 15780
138 이정하 -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file [1] 머시라고 2004-04-24 15670
137 정호승 - 밥값 보시리 2009-09-30 15547
136 안도현 - 단풍 박찬민 2003-08-14 15498
135 박제영 - 가령과 설령 보시리 2007-04-10 15382
134 류시화 - 패랭이 꽃 [4] 보시리 2005-05-08 15274
133 김춘수 - 西風賊 file [1] 보시리 2012-01-02 15140
132 도종환 -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3] 보시리 2005-01-25 15113
131 김현승 - 고독 [1] 박찬민 2003-06-06 15040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