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pr, 2007

박제영 - 가령과 설령

보시리 조회 수 15386 추천 수 0 목록
□□□□□□□□□□□□□□□□□□□□□□□□□□□□□□□□□□□□□□

가령과 설령

가령
이것이 시다, 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 라고 쓰여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고지식하고 유도리없는 雪嶺 을 찾아가려고 맥없이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허공을 떠다니는 무수하고 확실한 의지의 단어들이 모두 길잡이였습니다, 가령..
그리움이라든지, 가령 사랑이라든지, 가령 믿음이라든지.

그 가령佳嶺 조차도 설령으로 가는 길 어느 중간에 진치고 있을 줄..알기나 했나요, 어디.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설령.. 그곳을 오르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헛돌았습니다.
그 설령雪嶺 에도 봄이 온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카이의 심장에서 얼음이 녹고, 눈의 여왕 궁전 앞뜰에 버드나무가지 일렁이는
그런 < 그리 아니하실지라道 >를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50 류시화 - 길 위에서의 생각 [2] 박찬민 2003-05-26 7471
149 김용택 - 그리움 박찬민 2003-05-27 7074
148 심 훈 - 그 날이 오면 머시라고 2003-06-02 6428
147 이문재 - 거미줄 [1] 박찬민 2003-06-03 9521
146 김현승 - 고독 [1] 박찬민 2003-06-06 15040
145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박찬민 2003-06-10 6826
144 김춘수 - 꽃 [2] 박찬민 2003-06-12 7584
143 정현종 -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1] 박찬민 2003-06-23 7594
142 황다연 - 제비꽃 [4] 박찬민 2003-06-23 5942
141 도종환 - 해마다 봄은 오지만 박찬민 2003-07-12 5865
140 이정하 -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박찬민 2003-07-23 6527
139 정호승 - 별똥별 박찬민 2003-07-28 7496
138 안도현 - 단풍 박찬민 2003-08-14 15498
137 안도현 - 어둠이 되어 [2] 박찬민 2003-08-19 7007
136 임우람 - 꽃밭 박찬민 2003-08-19 7585
135 한승원 - 새 박찬민 2003-08-29 5998
134 류시화 - 나무 [1] 머시라고 2004-02-05 14228
133 도종환 - 어떤 편지 머시라고 2004-02-18 7007
132 정호승 - 달팽이 [1] 머시라고 2004-03-11 6587
131 천상병 - 강물 머시라고 2004-03-15 6475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