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Jun, 2003

이문재 - 거미줄

박찬민 조회 수 9522 추천 수 0 목록
******************************************

[ 거미줄 ]

거미로 하여금 저 거미줄을 만들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다

거미로 하여금 거미줄을 몸 밖
바람의 갈피 속으로 내밀게 하는 힘은 이미
기다림을 넘어선 미움이다 하지만
그 증오는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어서
고요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팽팽하지 않은 기다림은 벌써
그 기다림에 진 것, 저버리고 만 것

터질 듯한 적막이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

새벽 산 길을 걷는다.
자기가 만든 거미줄이 적외선 감지기라도 되는 냥 뽐내다가
이슬의 쌀쌀촉촉함에 발각된다.

이제는 물방울 머그믄 아름다움이라도 뽐내야 한다.

산행을 가로막는다.

어제 누군가 이 길은 걸었다면
거미줄이 나를 가로막지 않았을까?

어제 누군가 이 길을 걸었어도
주위 거미들이 귀뜸해주지 않았다면
누군가 겁없이 막아설 것이다.

profile

흠흠

June 06, 2003

이슬의 쌀쌀촉촉함에 발각되다라,,,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50 김정란 - 말을 배운 길들 보시리 2008-02-25 16771
149 이성복 - 물가에서 머시라고 2007-09-16 16759
148 도종환 - 가을비 file [1] 머시라고 2004-11-01 16469
147 이정하 - 그를 만났습니다 박찬민 2003-04-09 16064
146 박우복 - 들꽃 편지 file 보시리 2005-06-10 16017
145 김재진 - 보일러 file [2] 보시리 2012-06-26 15939
144 류시화 - 목련 머시라고 2003-04-15 15933
143 박상순 - 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보시리 2007-04-19 15902
142 정끝별 - 그만 파라 뱀 나온다 [2] 보시리 2009-12-09 15880
141 나희덕 - 비에도 그림자가 머시라고 2005-01-31 15811
140 기형도 - 바람은 그대 쪽으로 file 보시리 2007-06-25 15793
139 이정하 - 사랑의 이율배반 file [1] 머시라고 2004-04-19 15781
138 이정하 -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file [1] 머시라고 2004-04-24 15671
137 정호승 - 밥값 보시리 2009-09-30 15548
136 안도현 - 단풍 박찬민 2003-08-14 15498
135 박제영 - 가령과 설령 보시리 2007-04-10 15386
134 류시화 - 패랭이 꽃 [4] 보시리 2005-05-08 15275
133 김춘수 - 西風賊 file [1] 보시리 2012-01-02 15143
132 도종환 -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들은 아름답다.. [3] 보시리 2005-01-25 15117
131 김현승 - 고독 [1] 박찬민 2003-06-06 15041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