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Apr, 2007

박제영 - 가령과 설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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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과 설령

가령
이것이 시다, 라고 쓴 대부분의 것은 시가 아니다

설령
이것이 시가 되지 않더라도, 라고 쓰여진 것은 대부분 시다

가령(佳嶺)은 도처에 있다. 가령 화사하고 화려한 것. 가령 사랑이란 단어.
가령 그리움이란 단어. 봄날 꽃놀이 관광버스가 가 닿는 곳. 그곳이 가령이다.

설령(雪嶺)은 보이지 않는 자리에 스며 있다. 어둡고 춥고 배고픈, 눈과 귀와
혀의 뿌리. 설령 어시장 좌판이라도. 설령 공중화장실이라도. 설령 무덤이라도.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곳에 있다.

등반자여 혹은 동반자여
가령은 도처에 있고 설령은 도무지 없다
도대체 어디를 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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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고지식하고 유도리없는 雪嶺 을 찾아가려고 맥없이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기도 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허공을 떠다니는 무수하고 확실한 의지의 단어들이 모두 길잡이였습니다, 가령..
그리움이라든지, 가령 사랑이라든지, 가령 믿음이라든지.

그 가령佳嶺 조차도 설령으로 가는 길 어느 중간에 진치고 있을 줄..알기나 했나요, 어디.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설령.. 그곳을 오르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헛돌았습니다.
그 설령雪嶺 에도 봄이 온다는 것을 간과했습니다.
카이의 심장에서 얼음이 녹고, 눈의 여왕 궁전 앞뜰에 버드나무가지 일렁이는
그런 < 그리 아니하실지라道 >를 찾아가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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