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Oct, 2006

깐 콩깍지, 안 깐 콩깍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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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를 겁나게 잘 아는 친구 얘기 - 조영관 >

     어쩌다 곰장어 포실하게 익어 가는 포장마차에서
     몇 자 끼적거리다가 들키는 바람에
     시 이야기가 나왔는데 친구 왈
     가슴을 때리면 때리는 것이지
     때릴까 말까 그렇게 재는 것도 시냐고
     저 푸른 풀밭 거시기 하면서 끝나면 되는 것을
     뭐 좋은 말 있을까 없을까 겁나게 재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고
     친구는 심심한 입으로 깐죽거리며 얘기했는데

     유행가 가사처럼
     자기 깐에 흥얼흥얼 불러제낄 수 있으면 되는 거지
     업어치고 뒤집어 쳐서 깐 콩깍지인지 안 깐 콩깍지인지
     도대체 분간이 안 가게 써 놓은 것도 시냐고
     툭 터진 입으로 잘도 나불대다가는  
     거울에 달라붙은 묵은 때를
     걸레로 박박 문대 닦아내드끼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들 머리에도
     훤하게 쏙쏙 들어오게 고렇게만 쓰면 될 것이지
     기깔나게 멋만 부려쌓는다고
     그런 것도 시냐라고 친구는 겁나게
     싸갈탱이 없이 얘기를 했는데

     곰곰이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니 말이 맞기는 맞는 것 같다 해 놓고
     연기가 빠져나가는 천장만 말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래 짜샤 나도 안다 알어 그 정도가 될라면
     얼마나 지지고 볶고 엎어치고 뒤집어치고
     대가리를 얼마나 질끈질끈 우려먹어야 되는지 나도 안단 말이다
     허지만 요즘 같이 먹고살기도 바쁜 세상에 그런 고민을 해쌓다니
     정말 신통방통허다면서
     칭찬인지 비난인지 모를 소리를 주절거리다가는
     달랜답시고 어깨를 툭툭 치며 술까지 채워줬는데

     그래 죽도 밥도 안 되는 시
     고것도 사치라고 말하면 할말이 없다마는 하고
     서두를 떼어놓고도
     시가
     유행가 가사처럼 술술 그렇게 흘러나오기가
     쉽냐 임마 하고 말하려다가
     술잔만 빙빙 돌리며 고개를 팍 수그리고 찌그러져 있었는데
     한심하다는 것인지 안타깝다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가게
     친구는 입맛을 츳츳 다시며 술잔을 한입에 털어 넣더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흔적을 남기는
     우리 인생살이 같이
     농담 같으면서도 농담 같지 않고
     욕 같으면서도 욕이 되지는 않는
     망치로 때리는 것 같지만서도 호미로 가슴을 긁는 시가 될라면
     졸나게 쉬우면서도 생각할수록 어려운 시가 될라면
     얼매나 깊은 터널을 지나야 하는지 니가 어떻게 알겄냐 자식아, 라는 말이
     입안에서 뱅뱅 돌면서도
     웬일로 한숨 같은 기침만 터져 나오는지
     연기 자우룩하게 곰장어는 익다 못해 타고 있었는데

       <실천문학 가을호,2002년>


파랗게 열리던 새벽이 자리를 개어얹고
늑장을 부리는 오만한 태양의 이마께가 보이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

세상에 하고많은 일 중 어려운 일은 손가락이 미처 쫓아갈 수 없게 많지만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그 중 수 위 안에 들게 어려운 일 같습니다.
가슴을 울리고 머리를 끓이고 신경줄이 저릿저릿 해서야 비로소
아픈 명주실 뽑 듯 손 끝으로 뽑아내는 일.

암튼.. 혼자 읽고있자니..분위기가 아까와서 모셔왔습니다, 어투도 정겹고..^^

* 에드바르트 뭉크作 , 기차의 연기 - 딱..별클리에서 바라보는 바다 풍경과 비스끄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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