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Nov, 2005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머시라고 조회 수 3105 추천 수 0 목록
가는바람이 불어왔겠지.
등나무 잎들이 흔들렸다.
원재는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리를 올려봤다.
지난봄, 그 많았던 보랏빛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보랏빛들이 저물고 나면 여름이 찾아오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 섰다.
그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그대로 멈췄다.
원재는 멍하니, 마비된 듯한 표정으로,
이제는 사라진, 그 봄날의 정경을, 바라봤다.
등나무의 색은 초록빛이고 보랏빛이고 노란빛이고 붉은빛이다.
꽃향기 머금은 가는바람이 원재와 태식의 머리 위로
보랏빛 꽃등을 떨어뜨리며 지나간다.

                  - 김연수 소설집『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p.253
                                         비에도 지지말고 바람에도 지지말고 中

profile

보시리

November 08, 2005
*.231.237.168

...정말 어떤 누군가가 있어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어른이 되는지..

어느 새 서서 등나무를 올려다 보니 보랏빛이 모두 스러져가고 없듯..,
허둥댐 속에 어느 새.. 소년을 잃어버리고 만 어른은
"아름다움을 미처 아름다움인지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소년의
그 가닥 잡히지 못한 슬픔이 너무 안타까와 눈마저 매워 오는 걸..

이제는 주름앉은 젖은 눈, 아버지의 모습으로 소년에게 돌아 마주서서
끊임없이 꼭꼭 눌러, 되뇌어 일러주었을 것 같은 말...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 내 마음에도 그 새 꼭꼭 새겨진 말..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499 그게 그렇군~ [2] 보시리 2005-11-13 2428
»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1] 머시라고 2005-11-08 3105
497 여우와 장갑 file [3] 보시리 2005-11-06 2718
496 아싸 가오리~! file [2] 머시라고 2005-11-04 2907
495 [re] 저두 반성모드로 들어가게 하는 좋은 시~ 보시리 2005-10-31 2479
494 나를 반성하게 하는 좋은 시~ 가라한 2005-10-30 2265
493 누가 살고 있기에 보시리 2005-10-30 2382
492 이렇게나 긴 글..을 퍼 옴. file [2] 보시리 2005-10-22 2279
491 [re] [펌]달의 추억 (3부) 를 만들어봅니다. [1] 애린여기 2005-10-20 2426
490 [펌]달의 추억 (2부) - 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 file [1] 보시리 2005-10-20 2579
489 [펌]달의 추억 (1부) - 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 [1] 보시리 2005-10-20 2382
488 알 필요. file 보시리 2005-10-17 2511
487 이미 뚜껑은 덮였다 file [2] 머시라고 2005-10-15 6393
486 그곳에 가고 싶다.. file 보시리 2005-10-15 2397
485 겨울나무 file 보시리 2005-10-14 2437
484 다들 잘 주무시고 계시겠죠??? [2] 애린여기 2005-10-09 2393
483 날씨가 많이 쌀쌀하네요. [3] 淚愛 2005-10-09 3165
482 A spoonful of sugar.. file [4] 보시리 2005-10-08 2796
481 "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 - 하쿠나 마타타 님" [13] 보시리 2005-10-05 3141
480 네가 보고파지면 [1] 초짜 2005-10-04 3117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