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Aug, 2006

잃어버린 푸른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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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른 신발 - 안도현 >

    푸른 신발 하나
    강가의 모래톱에 버려져 있다
    모래톱은 아직 물자국을 버리지 않고
    울먹울먹 껴안고 있다

    주인이 신발을 벗어 멀리 내던졌는가
    신발이 주인을 버렸는가
    강물은 왜 신발을 여기다 내려놓았는가

    가까이 가서 보니 신발 안에
    푸른 물이 그득하게 고여 있다.
    이 질컥거리는 것 때문에
    신발은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마경덕님은 그의 신발論에서~, 그를 일컬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라고 그랬는데요,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글게, 과부하인 머리, 과부하인 기억, 과부하인 삶의 무게등등으로
내 신발이여, 그대가 진저리를 치며 달아날 만도 하니라~.

타호湖를 끼고 있는 산맥줄기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골짜기가 깊은 곳입니다..
골이 깊은 곳은 산도 높다고 하지요.

산을 내려오기 위해 올라간다던 어떤 말을 빌미로,
거꾸로, 골짜기의 자궁으로 들어가서 마치 다시 태어나기라도 할 것처럼
열심히 내려갔습니다.

매를 맞을 예상이 더 겁나듯,
점차 다시 올라올 생각에 암담해지기 시작했습니다만~,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닷~!

바닥에 닿았습니다.
그리고, 동굴 안의 무릉도원처럼, 소리도 없이 쩌억~ 펼쳐지던 호수.
그 호수의 모습은 산 위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두려움은 기꺼운 즐거움으로 바뀌고, 바닥이 선명히 들여다보이는
호숫가의 모래 사장에 앉아, 촐랑거리며 쫓아와 장난치는 물에 발을 담그고
한동안 그렇게 멈추어져 있었습니다.

다시 올라오는 길은 마치, 어두움의 세계에서 되찾아낸 에우리디케의
손을 잡고 걸어나오는 오르페우스처럼 씩씩하게 시작했지만
위로 올라올수록 점차 중력의 힘에 눌려, 산 꼭대기에 되돌아올 때 쯤엔
그 신선한 감상은 뜨거워진 머리로 인해 어슴프레~ 희미하기만 했더랍니다,

의심으로 인해 다시 잃어버린 딱, 바로 그 에우리디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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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