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YLE>P{margin-top:2px;margin-bottom:2px;}</STYLE>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right><FONT color=blue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right><FONT color=maroon size=2>Written by 임진모</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BORDER-COLLAPSE: collapse" align=left><FONT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
<IMG height=175 hspace=10 src="http://baez.logosia.com/joan_mid2.gif" width=180 align=right vspace=10></FONT><FONT color=teal size=2>60년대의 포크음악이 저항과 리얼리즘의 성격을 갖추어 청년들의 절대적 호응을 받게 된 데는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당시 젊은이들의 의식, 시각, 욕구 등에 양심적 가치가 우선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 </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조안 바에즈는 포크프로테스트 시대에 밥 딜런의 여성 대응자로서 오히려 포크의 저항적 색채를 밥 딜런보다 더 오래 지켜감으로서 포크음악의 기수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그녀는 밥 딜런보다 빨리 포크음악의 대중화에 기여했는데 그럼에도 밥 딜런의 여성 대응자 정도로 일컬어지는 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습관적인 성차별이 깔려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안 바에즈는 실로 약자를 위한 </FONT><FONT color=teal size=2>
<IMG height=225 hspace=20 src="http://baez.logosia.com/image/baez01.jpg" width=230 align=left vspace=20 border=5></FONT><FONT color=teal size=2>여교사와 같았다. 그는 늘 힘없는 사람과 상처받은 사람 편에 서서 노래했으며 미국내의 대표적 약자 가운데 한 계층을 이루고 있는 가난한 이주민의 정서를 노래에 자주 실었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그리고 그들에게 잊혀진 자유와 잃어버린 권리를 쟁취하라는 메시지를 던졌으며 나아가 이런 소외 받는 계층 위에 군림하고 전쟁만을 고집하는 미국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Strangest Dream과 같은 반전가요를 잇달아 발표하고 심지어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듯한 과격한 노래까지 불러 주위를 놀라게 했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정치색이 짙은 노래를 지향한 이 맹렬여성은 1941년 멕시코가 모국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피부는 검은색이었다. 그로 인해 백인 우월의 세상에서 어린시절부터 인종차별을 당하며 성장했다. 그의 부친은 핵물리학자로 방위산업체의 스카우트를 많이 받았는데 원폭의 가공함을 잘 알고 있는지라 번번히 거절했다고 한다.<BR></FONT><FONT color=teal size=2>
<IMG height=344 hspace=20 src="http://baez.logosia.com/image/baez02.jpg" width=230 align=right vspace=20 border=0></FONT><FONT color=teal size=2> </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바에즈는 민중적이고 반상업적인 성격을 특징으로하는 포크음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머니의 권유로 보스턴대학의 연극과에 입학하긴 했지만 학업에는 뜻이 없었고 포크의 전당인 하버드스퀘어 주변의 다방을 드나들곤 했다. 그녀는 한때 1년공연의 개런티로 10만 불을 제시한 프로모터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는데,</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maroon size=2>"포크음악은 의식에 관여하는 음악이다. 누구든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포크음악이라고 말할수 없다"</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라고 거부이유를 밝혔다. 돈보다는 인류애를 선택하는 가풍을 그녀가 이어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바에즈는 이 세상이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로 뚜렷이 이분되어 있음을 일찍이 간파하였는데 초기의 노랫말을 보면 약자의 교사라는 말답게 가난이라는 말이 무수히 반복된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그녀는 50년대말 하버드스퀘어에서 활동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59년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여 운집한 1만3천명 청중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심어준다. 당시 관람을 하던 뉴욕 타임즈의 기자 </FONT><FONT color=teal size=2>
<IMG height=339 hspace=20 src="http://baez.logosia.com/image/baez03.jpg" width=230 align=left vspace=20 border=5></FONT><FONT color=teal size=2>로버트 셀던이 바에즈의 노래를 듣고, </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maroon size=2>"전율을 자아내는 풍부한 비브라토와 열정적이며 잘 통제된 호소력을 지닌 젊은 소프라노"</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라고 극찬을 했다. 62년 타임지는 그녀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존 바에즈는 현 포크진영 신인중 가장 재능있는 가수라고 언급했다.</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BR>그해 그녀는 3장의 앨범을 발표 선풍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하고 이듬해 밥 딜런과 조우하여 뉴포트 포크페스티발에 함께 서는 등 콤비플레이를 전개 주목을 끌기도 한다. 반전과 인종평등을 위한 일이라면 뭐든지 다했다. 연좌농성 프리덤라이트, 시가행진등 모든 형식의 저항에 적극참여 했으며 그런 일들이 순회공연을 대신했으며 또 그런 일들들이 순회공연 내용이기도 했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65년에는 캘리포니아의 카멜벨리에 있는 학교건물을 개조하여 "비폭력연구사무소"를 개설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수강생들은 간디와 핵시대같은 평화관련 서적을 탐독했고 평화에 대한 세미나와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물론 존 바에즈였으며.</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한데 카멜벨리의 일부 주민들이 연구소의 회원과 수강생들이 자신들의 아름다운 영토에 침입하여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즉각 연구소 활동을 중지하라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순진한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이 히피, 그리고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위험인물"로 비쳐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들의 크레임은</FONT><FONT color=teal size=2>
<IMG height=357 hspace=20 src="http://baez.logosia.com/image/baez04.jpg" width=230 align=right vspace=20 border=5></FONT><FONT color=teal size=2> 거부되었고 연구소는 상당기간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마을 주민뿐 아니라 정부도 존 바에즈를 "통기타치는 파괴 분자" 로 간주했고 "페스트"와 같은 존재로 치부했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그녀의 이름은 대학생들에겐 명성이었지만 정부입장에서는 악명이었다. 여러 차례 정부 기관과 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유감'을 표해왔지만 그는 이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는 함께 현장을 뛴 동지이자 운동권의 지휘자인 데이비스 헤리스와 68년 결혼을 한다. </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우리에게 조안 바에즈는 밥 딜런과의 로맨스로 유명한데 그녀는 밥 딜런을 진정으로 사랑했고 밥 딜런도 그녀를 모델로 한 "Vision of Johanna" 등의 곡을 써 간접적으로 애정을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부분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의 순수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한 가지 주목할 점은 밥 딜런이 포크록이란 장르를 개척하는 등 포크음악과 록 역사에 한획을 그은 거인으로 평가받는 반면 조안 바에즈는 음악적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으로, 평론가들은 그의 곡을 걸작으로 꼽</FONT><FONT color=teal size=2>
<IMG height=261 hspace=20 src="http://baez.logosia.com/image/baez06.jpg" width=230 align=left vspace=20 border=5></FONT><FONT color=teal size=2>는 사람은 없다. 아마도 그녀가 직접 곡을 쓰지못했다는 점에 대한 실력폄하와 포크를 했지만 너무나 고운 목소리를 지녔다는 점이 거부감으로 작용했다고 생각된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밥 딜런도 언젠가 "조안 바에즈의 음악은 포크를 하기에는 너무 아름다워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미성의 소유자였기에 실상 음반 판매면에서는 밥 딜런을 앞서갔고 특히 포크의 본질적 성격을 더 오래 견지해 나갔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비평계가 조금은 잔인했다는 느낌도 있다.</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70년대 이후 조안 바에즈에게 정치색은 줄어들고 대신 사회사업가적인 면모가 나타난다. 음악에도 변화가 일어나 전속 레코드사가 뱅가드에서 A&M으로 바뀌면서 통기타의 자연음에서 일렉트릭 사운드로 탈바꿈, 밥 딜런의 전철을 밟는다. 이렇게 변화가 깃들고 조안 바에즈라는 이름 자체의 신비력이 떨어져가던 71년에 이르러서야 "The Night They Drove Old Dixie Down"이란는 곡이 처음으로 싱글차트10위권에 진입을 한다.<BR></FONT><FONT color=teal size=2>
<IMG height=287 hspace=20 src="http://baez.logosia.com/image/baez05.jpg" width=230 align=right vspace=20 border=5></FONT><FONT color=teal size=2> </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80년대 들어 그는 팝음악의 공식무대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지만(메이저 음악사들의 기피때문에) 간간이 군비축소, 인종차별반대, 환경보호 등의 현실문제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비록 반전이나 이념을 담은 곡을 내놓진 않았지만 입장을 선회하지 않았으며 여전히 인기를 지향하는 상업가요는 배격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이 어떠하든 실로 60년대의 조안 바에즈는 기념비적이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대중음악의 역사를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현실반영과 저항의 곧은 태도로 무대나 혹은 장외활동에 임했던 여가수는 그 외에는 찾기가 어렵다. 63년 그녀는 잡지 LOOK에 이렇게 밝힌 바 있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maroon size=2>"나는 낙태로 아이를 죽이는 행위 인종차별로 정신을 죽이는 행위등의 현실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은 내 노래를 좋아한다. 난 이 두 가지 측면을 따로 분리할 수 없다. 두 가지가 나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BR></FONT></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FONT> </P>
<P style="MARGIN: 0px 5%;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align=left><FONT color=teal size=2>그녀의 현실에 대한 관심은 계속되고 있다. 노래에 대한 애정도 계속 되고있다. 이 두 부분 아니 그녀의 모든 부분은 그가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까지 계속될 것이다</FONT></P>

profile

Philo

October 01, 2004
*.142.190.241

오늘 밤만 놔둬 보실래요? 제가 지금 독일어 윈도우라, 한글이 깨지거든요. 나중에 여기 시간으로 밤에 해볼게요. 한국 시간으로 내일 아침까지만, 놔뒤주시길,, 머시라고님께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profile

향기로운 사람

October 01, 2004
*.50.12.251

네, 그럼 여유있게 화요일쯤 지울까요?
머시라고님은 물론 양해해주시겠죠.
아님 혹시 필요한 다른 분들 위해 지우지 말까요?
profile

Philo

October 01, 2004
*.142.190.241

조금만 놔둬주세요. 저는 지금 정말 나갑니다. 휘리릭--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659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 [2] 보시리 2005-02-24 2085
658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2] 보시리 2005-02-19 2085
657 환영,환영! 웰컴 어보드~2005~!! [1] 바스락 2005-01-01 2085
656 띠리리링~... [1] 보시리 2004-12-12 2085
655 [re] 좀 우울해지지만.. 그래도.. [2] Philo 2005-01-09 2086
654 올해가 거의 가고 있습니다. [3] Philo 2004-12-19 2087
653 수요일에는... file [2] ㅂ ㅅ ㄹ 2004-12-18 2087
652 동영상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보시리 2005-03-08 2088
651 이 작은 새.. file [7] Philo 2005-02-25 2088
650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것은.. [3] 보시리 2005-03-09 2089
649 바다로 흘러간 강~ [1] 보시리 2005-01-10 2089
648 한 박자 천천히~! [5] 머시라고 2005-01-29 2091
647 보기에 따라~... 보시리 2005-02-06 2092
646 벌써 2004년이네요.. [1] 가라한 2004-01-02 2092
645 아랑훼스.. file [4] Philo 2005-02-26 2093
644 바람속에 가고싶은 곳~ file 보시리 2005-04-01 2094
643 사랑의 다른 얼굴... [1] ㅂ ㅅ ㄹ 2004-12-29 2094
642 아래 샹송과 팝의 비교.. [3] Philo 2004-10-18 2095
641 가입을 어떻게 하나요. 도아주세요. [4] 주바라기 2003-11-18 2095
640 나르시스 전설의 뒷이야기.. file [1] 보시리 2005-04-14 2096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