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Jun, 2005

그린 파파야 향기

보시리 조회 수 11533 추천 수 0 목록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가 그리워져서 올려봅니다..

[ The Scent of Green papaya..]

우리나라에서는 <그린 파파야 향기>라고 출시 되었지요.
1993년, 트란 안 홍감독의 첫 장편 작품.
스토리 전개보다, 하나하나의 장면이 그림같아서 인상적이던
이 영화는 결국 칸느에서 황금 카메라상을 받았고
동시에..붕어빵에 붕어가 없듯, 베트남 영화를 가장한
프랑스 영화라고 비난도 받았습니다.
영상미 만을 추구한 비현실적인,현실을 덮어버린 영화.

트란 감독의 기억에는 베트남이 거쳐가야 했던 어두운 현대사가
각인되어 있지 않아서인지,반전의 메시지같은 장면 대신
아름답고 이국적인 풍경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암튼..그는 카메라로 잡은 영상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화면을 아름답게 잡다 보니까.. 그 더운 나라에서..
땀냄새나는 장면이 없긴 합니다..ㅎㅎ..

100% 파리의 full set 에서 촬영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베트남의 가정의 모습을 정확하게 재현 했다고 하죠..
가옥 구조하며..,불교국가답게 집안 곳곳에 세워진 불상과 제단
아침이면 향을 피워올리고 불공드리는 모습
통금 싸이렌이 울리고, 등교하는 아오자이 교복차림의 여학생들..
골목길의 이발소의 싸이클로..심어놓은 대나무..파파야 나무..
바닥의 차가운 돌과 타일..모기장, 모기향등이 기억나네요..
글구..너무 부러웠던..무이의 모습은..곤충들을 너무도 좋아하는 것
귀뚜라미, 메뚜기.. 물도 주고 먹이도 주고..^^;;

위의 포스터에 나오는 소녀가 바로 주인공 Mui 입니다.
루 만 산이라는 프랑스에 사는 꼬마배우.
너무 예쁘죠..영화 안에서..
파파야든..두리안이든..망고든 열대과일의 외모는 참 투박하고
못생긴 것이 많습니다..그러나, 그 선입견을 넘어
과육의 향과 맛을 즐기는기쁨처럼..
우리 뇌리에 새겨진 어두운 이미지를 벗겨줄..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1950년대 베트남.

무이는 열살이 된 예쁜 소녀입니다..
집안이 어려워서 입을 하나라도 줄일 목적으로 무이는 사이공의
어느 부잣집에 하녀로 들어가게 됩니다.

처음 들어섰을 때의 그 두려움..
처음보는 큰 집..윤나게 닦여진 집안.
엄마 생각.. 가족 생각..

무이의 하는 일은 집안 청소와,또 티 아주머니를 도와 음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먹는 반찬은 대개 돼지고기나 닭볶음..
거기에 미나리, 배추. 청경채(Bokchoy)같은 채소를 살짝 볶아서 곁들입니다.
티 아주머니는 여러가지 팁을 알려주지요..
가령..야채를 볶을 때는 먼저 팬을 뜨겁게 달군다음 기름을 두르고 살짝 볶을 것.
그래야 향이 간직되니까요..
고기를 볶을 때에도 달구어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마늘을 넣어
기름에 향이 배면 고기를 볶고, 야채는 나중에 넣어살짝 볶은 후 간장으로
간을 한다...글고.. 반찬이 부족할 때는 조금 짜게..한다..^^*
(기억 나세요~? 막내 꼬마의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지다가 뱉어 버리던 것~?)

또한 주인집 아이들은 음식을보기좋게 담지 않으면 잘 먹지 않기 때문에
보기좋고 맛있게 음식을 담아내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이 부분은 트란 안 홍 감독 자신의 경험이 배어있는 부분..
<우리 어머니는 요리하기를 즐기셨다..그리고 음식을 보기좋게 장식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였다.언제나 바탕색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색으로 꾸미곤 하셨다>)

영화 속에 소도구들도 눈에 띄죠..
커다랗고 둥근 웍(중국식 frying pan)..길다란 젓가락..네모난 칼..숯불화로 등..

이렇게 매일 밥하고 청소하고..청소하고 밥하고..
거기에 짖궂은 막내 도령..일부러 침도 뱉고, 물통을 발로 건들건들하다가
청소 마친 마루에 쏟아버리고..파리 날개 뜯어놓기..개미 눌러 죽이기..
그 특유의 오만한 꾸러기..

이렇게 힘들고 바쁜 하녀 생활에서도, 무이는 소소한 것들을 사랑하면서
예쁘게 자라납니다..귀뚜라미와 메뚜기...풀로 만든..여치 집..

그리고 소녀에게 얼핏 찾아온.. 연분홍 빛깔의 마음..
무이는 주인댁 큰 아들의 친구인 쿠엔을 보면서 설레입니다.

어느날.. 드디어 쿠엔에게 자신이 만든 요리를 대접할 기회가 생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준비를 마친 후.. 깔끔하게 옷 매무새를 다듬고
접시를 들고 나섭니다..
무이에게 눈길조차 돌아오지 않는 상황에서..쿠엔은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지요.. 되돌아서서 나오는 무이의 그 득의양양한 건강한 미소가
잊혀지질 않네요~!! ^^*

10년의 시간이 흐릅니다.

이 시간의 공간을 뛰어 넘으면서..
커다란 초록색 파파야의 껍질이 벗겨지고..
가운데를 갈라 놓은 파파야의 새하얀 진주같은 씨를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무이의 하얀 미소..

파파야는 베트남 사람들이 흔하게 먹는 채소입니다.
영화에서 처럼,집안 텃밭에 심고 그것을 따서 끼니때마다
손쉬운 요리를 해먹습니다..

깨끗이 씻은 파파야의 껍질을 벗기고 수직으로 칼집을 준 후
다시 그 위에 반대로 칼집을 넣으면 고운 파파야 채가 만들어지죠.
거기에, fish sauce(생선 액젓)와 고추,식초,설탕,라임,레몬즙 등을
섞은 드레싱을 뿌려 무칩니다. ~^^*~

트란 안 홍의 말을 다시 곁들이자면..
<남자들은 식탁에 올라온 파파야를 먹게 되지만, 그것을 따고 씻고
껍질을 벗겨 손질하는 것은 여자들이다.  그린 파파야는 이런 이유로
내게 일상적인 여성들의 제스쳐와 행동의 세계를 연상 시킨다,,>

말하자면 파파야를 손질해서 요리하는 것은 베트남 여인의 삶 그 자체이다..
소녀가 자라서 여인이 되고 그러한 성숙의 과정에서 일상처럼
파파야를 손질하고 요리하게 되는 것이다~...

암튼..
10년이 지나는 동안 주인집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옵니다..
무위도식하며 음풍농월..재산을 탕진하던 주인의 가출과 죽음..
집안의 경제적 몰락..
그런 속에 무이가 목격하게 되는 어느 할아버지의 지순한 사랑..
또, 주인마님의 상처..무이를 죽은 딸과 동일시하는 아련한 사랑..

그 시간동안 살림과 요리를 배운 무이는 새로 들어온 주인집 며느리의
신식 경제 방침에 따라서 몰려 나가게 되지요..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무이에게는 놀라운 기적이 되는겁니다..
속으로 안타깝게 연모하던 그, 음악가인 쿠엔의 집으로 옮기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그에게는 신식교육을 받은 양가댁의 약혼녀가 있습니다.
그는 그녀에게는 닿을 수 없는 무지개와 같은 존재이지요.

무이는 쿠엔의 식사 준비와 집안일에 정성을 기울입니다..
그녀가 준비하는 쿠엔의 식사는 따뜻한 밥과 반찬들..
항상 식지 않도록 뚜껑을 잘 닫아서..사랑을 담아서
작은 쟁반에 놓아 정갈하게 차려냅니다.

어떤 날은 그런 음식을 모른 체 하고 약혼녀와 외식하러
휑~ 나가버리기도 합니다..
약혼녀와 함께 아침식사를 하는 날이면, 그녀의 입맛대로 깔끔한
달걀후라이, 신선한 빵, 버터,잼에 커피등을 차려 놓습니다..

자신의 작은 발을 쿠엔의 신발에 넣어 보는 무이~.
어느 날 무이는 쿠엔의 서랍에서 자신의 얼굴을 그린 스케치를
발견합니다..마음의 움직임인가..

시간이 흐르고.., 그러나 무이의 자세는 변함이 없습니다..
따뜻한 사랑이 담긴 음식이 그랬을까..
그녀의 사랑이 그녀에게 얼굴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쿠엔은 무이에게 글씨 쓰는 법, 읽는 법을 가르칩니다..
햇살같이 노란 아오자이를 입은 그녀가 환하게 앉아 책을 읽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듯, 앞으로도 순수한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듯이~..

기억이 슬슬.. 살아나십니까~??
ㅎㅎ.. 네에,저 수고 많이 했습니당~~ ㅋ

profile

커피콩

June 15, 2005
*.171.176.201

와우 진짜 수고 많이 하셨네요.
저도 이 영화 보고 파파야 채 만들고 하는게 하도 좋아뵈서
파파야 먹어보길 꿈꾸다가
막상 먹어보니 기대만큼 상쾌하질 않아서
그 뒤론 파파야는 쳐다만 보고만다는 그런 전설이... ㅎㅎㅎ
profile

희야~

June 15, 2005
*.217.76.147

재주도 좋으셔라~
막~~~보고시퍼 지잖아요
profile

보시리

June 15, 2005
*.205.184.218

안녕~! 희야님~.. 재주요~? 먼~?...
오래되었으니..한번쯤 다시봐도 좋을 것 같아서요~ㅎㅎ
그건 글코...
파파야는 과일입니다...야채같은..
토마토가 야채이듯...과일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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