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Jul, 2006

老시인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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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사러간 내 ‘시인 남편’은 술에 취해 장미 한다발만…”

(::정진규 시인 아내 변영림씨, 산문집 ‘빈 하늘에…’ 펴내::)

“남편은 생활에는 관심이 없이 오로지 시 밖에 몰랐던 전형적인 시인이었지요. 세 아이를 키우는 데 살림이 쪼들렸지만, 힘들게 견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저 숙명으로 여기고, 시인의 아내로서, 아이들의 어머니로서 힘껏 살아온 것뿐입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시 전문지‘현대시학’을 18년째 내고 있는 시 인 정진규(68)씨의 부인 변영림(69)씨가 생애를 돌아본 산문집을 출간했다. 변씨는 “기억나는 대로 메모해 둔 글을 주변 친구들이 책으로 묶자고 해서 정리해놓고 보니 민망하기 그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책 ‘빈 하늘에 걸린 빨랫줄 하나’(북인 발행)에는 한국전쟁 중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밑에서 5남매 중 맏이로 자랐던 이야기에서부터 가난한 시인의 아내로 살았던 45년 세월, 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했던 경험 등이 담겨있다.

변씨는 고대 국문학과 재학시절에 같은 학과 1년 후배였던 남편 정씨를 만나 졸업하던 해인 1961년 결혼했다.

“이승만 독재가 최고조에 달했던 암울한 시절이었지요.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일념을 가진 남편이 좋아보였어요. 저도 문학지망생이었으나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시인 옆에서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당시 젊은 남녀들은 지금처럼 조건 따지지 않고 그저 운명에 이끌려 결혼들을 했습니다. 저도 아무런 고민없이 시인의 아내가 되었지요. ”

시인의 아내로서 그가 겪었던 생활고는 ‘장미 한 다발과 귤 한 봉지’라는 글에 잘 나타나 있다. 40여 년 전 크리스마스 전야( 前夜)였다. 쌀독은 비었고 아이는 배 고프다고 보챘다. 원고료 받을 것이 있다며 쌀 사오겠다고 나간 남편은 새벽 2시가 돼서야 술에 취한 채 장미꽃 한 다발과 당시로서는 비쌌던 귤 한 봉지 를 들고 돌아왔다. 쌀이 보이지 않아 남편 가방을 빼앗아 열어보니 책만 가득했다.

이렇게 ‘가슴아프게 멋진’ 시인 남편에 대한 변씨의 마음은 남편이 만든 잡지 ‘현대시학’에 대한 애증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돈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고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니고 신분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야.… 나는 그동안 이 ‘현대시학’ 을 질투하고 미워하고 훼방하고 냉담하고 측은해 하고 진저리를 내기도 하고 ….’

변씨는 그러나 정시인이 만든 ‘현대시학’이 날로 각박해지는 우리 시대의 삶을 적시는 감성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세 아이가 장성해서 독문학자로, 조각가로, 경영컨설턴트로 제 몫을 하며 살고 있으니 다행한 삶”이라며 “이번 책의 표지 제목과 본문의 그림을 손자들과 딸이 쓰고 그렸다”고 자랑했다.

다시 태어나도 시인과 결혼하겠느냐는 우문(愚問)에 그는 “하게 되면 하겠지요”라고 현답(賢答)하며 환하게 웃었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 문화일보>

누군가의 꿈이 하늘로 올라가서 북구의 오로라같은 빛을 발하는 느낌입니다.
후~웁 심호흡.
폐부 안에 틈새마다 스며있는 눅눅한 우울을 내보내고, 극광의 섬세한 기운을
가득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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