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Nov, 2004

왕따

머시라고 조회 수 3497 추천 수 0 목록
찹찹한 마음 뿐인 내게 경호형이 물었다.
  "찬민아 !  왜 창밖을 보고 있어? 밖에 눈 안와 !"
10월의 마지막 밤이 지나니 안지나니 하고 있었는데,
벌써 11월도 삼분의 일을 넘어서고 있다.
  "쩌기 오고 있는데요.."
  "어디??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으로 북쪽을 가리키며) 쩌~어~기???"
  "네.. 이쪽으로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여까지 올라믄 한 이십일 걸리겠는데요?"
  "와~ 정말이야..?"
  "우리가 쩌~어~리 뛰어가서 첫눈 몇일 땡겨볼까요?"

  한 친구의 싸이를 둘러보다가 학과 친구들의 단체사진들이 눈에 띄었다. 졸업사진, 친구결혼식 사진, 야유회 사진 등.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내 모습이 모니터에 반투명으로 그을린다. 저 녀석 정말 결혼했네? 참, 나는 무엇을 하느라고 그것도 몰랐단 말인가. 나만 빼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친한 것 같은 소외감.

  자기가 친하고 싶은만큼 친하게 된다던 녀석이 사진속에서 나를 보고 비웃고 있는 듯 했다. 저 녀석과도 몇 년은 친하게 지냈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비단 친구 뿐만이 아니다. 1년 후배의 싸이, 2년 후배, 3년, 4년, 5년 후배.. 다 둘러보아도 내가 잘못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 선배 쪽으로 올라가면 또 미칠 지경이다. 울타리 안의 그들에게서 쫓겨나 있는 것 같다.

  머리속에서 과거의 모든 기억들이, 내 스스로가 그들이 등돌릴 수 밖에 없도록 살아온 인과관계로 재구성되고 있다. 아니다. 내게는 이제서야 재구성된 그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은 나에 관한 기억이다. 애써 외면해 오던 가식의 댐이 무너지고, 쏟아지기 시작한 진실 앞에, 내가 허우적대고 있는 것이다. 잠깐 졸았던 꿈에선 사방이 손가락질이다. 너무 많은 죄를 짓고 살았다. 잠들기조차 두려운 밤이다. 손등에 앉은 모기가 나를 죽일 것 같다. 이건 꿈이다.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67 답답한 스케줄 머시라고 2010-10-14 3311
66 김재량 선생, 습기를 보니 자네 생각이 나는구만. 머시라고 2010-11-22 12635
65 OO야, 날씨도 쌀쌀한데 밖에서 근무한다니 걱정이구나 머시라고 2010-11-22 4457
64 대학 동창회 사업에 대한 의견 구합니다. 머시라고 2011-01-05 3864
63 이직 인사 드립니다. 머시라고 2011-02-28 7054
62 새 직장에서 두 달째 [1] 머시라고 2011-04-28 35975
61 휴일의 어버이날 1 머시라고 2011-05-11 30055
60 약속 머시라고 2011-06-24 12254
59 딸~! [5] 머시라고 2011-10-08 30024
58 아기에게 불러주는 청산별곡 [1] 머시라고 2011-12-18 29829
57 2011 송년일기 머시라고 2012-01-01 54175
56 박찬, 3년 만에 박사학위 취득 file [2] 머시라고 2012-03-03 45715
55 풍년시골 불청객 볼라벤 file 머시라고 2012-08-26 6598
54 태풍 따라온 추억 펌프 file 머시라고 2012-09-06 4878
53 주객전도된 벌초의 하이라이트 file 머시라고 2012-09-08 29657
52 박주현은 TV광고광 file 머시라고 2013-02-02 5467
51 겨울산 가족 나들이 file 머시라고 2013-02-03 19862
50 막내의 생일 축하는 영상통화로 file 머시라고 2013-02-04 14764
49 고사리손 타자연습 file 머시라고 2013-06-22 5026
48 또 한 해, 일 년만의 지리산 file 머시라고 2013-07-17 29731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