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Jul, 2004

일기쓰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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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쓰는 것은 잘못한 일이 있는지 없는지 진술하는 시말서의 느낌이었다.
다모임이나 싸이월드의 할아버지격인 그림일기는
크레파스 없이 연필소묘기법만 사용해야 한다는데 자존심이 상했고
집이나 학교측에서도 일기의 필요성을 나에게 설득력있게 마케팅하진 못했다.

방학이면 일기는 숙제라는 의무감이 부여되었고,
여름방학의 일기 속에서 나는 2~3일에 한번은 냇가에서 놀아야했고,
차별화를 위해 그저께 물고기를 잡았었다면, 오늘은 개구리를 잡게 되었다.
겨울방학은 냇가 이외에도 격일로 산에서 총싸움을 했다고 쓸 수 있었고,
날씨는 삼한사온을 철저히 유지시켰던 것 같다.

중학교 일기는 첫사랑을 위한 변주곡이었다.
고등학교에서 어떤 계기로 인해 일기에 의지하며 살게 되었고,,
수업시간에도 책상 위에는 일반 노트와 구별되지 않는 일기장이  놓여있었다.
고등학교 졸업전에 이 일기장들의 분실로 또 한번 힘이 빠졌고,
대학에 입학해서는 펜팔하는데 손가락 힘을 모두 소진해버린 듯 싶다.

제대 후 나랑 헤어지까마까 고민하던 여자에게 군시절 일기를 보여줬는데
헤어짐을 확신하고, 이별한 그 뒤로 절대 전화 한번 오지 않는다.
그 사람이 파악한 일기의 진실성이라고 믿는 부분들이
나에 대해 더이상 궁금하지 않게 만들어 버렸나보다. 읽기와 반응...
종종 티비연예프로에서 '이별후 이러는거 정말 싫다'
베스트 파이브 안에 있음직한 그런 애걸복걸은 다 해봤던 창피함과 분노들,,
쓸데없는 아쉬움과,, 헤어지면 그 정도는 해줘야 내가 편해져선지...

위 사건은 나의 사고와 글쓰기 말하기 습관에 획기적인 변화를 야기시켰다.
공개된 이곳에 일기를 지속할수있는힘도 그런 메타를 유념하게된 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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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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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에 대해 잘 모르는데, 으무웅~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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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