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Feb, 2005

나의 노이로제인가

머시라고 조회 수 32233 추천 수 0 목록
신사장이 '단점 지적해 주기'로 했던 말에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그것이 나에게는 삶을 연명延命하는 이유였다. 남들이 볼 때 꿈이라고 하기엔 소박할지 모르지만, 실현 가능한 꿈을 꾸고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던 비스마르크를 동경하기 전부터 내 일상의 에너지였다. 그래서 그 시간은 '그렇지 않을 경우 목숨을 버려도 좋다'는 조건부 자살동의서를 되내이던 나의 존재가 절친한 친구에게 짓밟혀 만신창이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신사장의 말을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 남기지 않고 말로 전했던 금연의 이유를 생각해준다면 나를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지도교수님께서 담배를 피워보시진 않았지만, 사람들이 금연하지 못하는 것은 한 순간, 얼마나 힘들지 모르겠지만, 그 한 순간을 참지 못해서 일거라고 하셨다(`04. 10. 9. 주간보고시). 육체상태상 이래저래 금연중이었던 나는, 실력없는 놈이 의지까지 부족하다는 말을 듣기싫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몇 십 보루를 사오셔서 내게 담배를 내던지며 피우라고 윽박질러도 피우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지만 나도 모르게 몇 번 피웠던 적도 있었다. 몰래 학교 밖으로 뛰쳐나가 육교 위에서 쪼그려 담배를 피웠는데, 교수님 차가 육교 밑 도로를 지나갔다. 주저앉아 나는 한없이 실망하고 분노했지만, 꿈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조금은 관대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웠던 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었던 때도 있었지만, 피우지 않겠다는 내 외침은 끊이지 않았다.

그제는 새벽내 뒤척였다. 밤에 술을 좀 마셨는데, 어제 밤도 잠은 오지 않았다. 오전내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는 나에게 세미나 준비를 너무 밤늦게까지 하지마라는 사람도 있었다. 그까이꺼 이틀 가지고 그런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Droopy의 댓글을 보고 부화(옛:부아,허파)가 치밀어 오를만큼 나는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잠을 설치다 어느 순간부터는 포기하고, 어둠 속에서 나의 노이로제에 대해 생각했다. 천성이 그런지를 따져보려 거슬러 올라갔다. 자연과 인간을 대하는 자세에서의 예민성은 제쳐두고, 반응 경향이 달라졌던 시점을 찾아봤다. 거기엔 '예민하게 좀 소심해지라고! 대범한 것과 무딘 것은 달라!'라고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짓이었겠지만, 사귀던 사람의 배신背信을 자책自責하며, 그런 징후가 없었는지 일기와 편지를 뒤적이던 사람이 있었다. 이때 눈치를 챘더래면이나 이렇게 배려했었더라면 등의 후회들. 이 노이로제가 봄햇살처럼 찾아왔던 사랑에게 상처만 주었는데도, 나는 사랑보다 노이로제를 감싸고 있었다.

신경증을 한번 더 발휘한다면 글쓰기에 대해 말하고 싶다. 신사장은 내가 책도 많이 읽었고 글 재주도 좋다고 했었다. 그와 그의 누나인 쏘주한사발님의 유쾌한 글쓰기에는 못 미치지만 친구에게 받은 칭찬은 즐거운 것이었다. 그런데 그 술집에서 책 많이 읽고 글 재주 있는 사람은 무섭고 대하기가 두려운 사람이라고 했다. 내가 가장 편하게 대했던 친구가 나를 글 재주있는 사람으로 몰아붙이고 어렵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글쓰기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고, 사용해 온 단어의 문장들이 나만의 언어로 씌여진 게 아닌가 하는 혼돈을 불러왔다. 그래서 보시리님이 남긴 자유게시판의 댓글에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나는 위의 다섯 문단을 적는데 5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홈페이지 거의 모든 문장을 신중하고, 가장되더라도 진실되게 쓰려 애썼던 것 같다(누군가는 위를 세어보고 다섯 문단이 아니라 여섯 문단이라고 따지고 들기 시작할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들이 홈페이지를 운영하거나 폐쇄하는 것은 관심과 게으름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도 이 홈페이지를 폐쇄하고 싶어졌다. 나를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지려 시작했지만, 일기 100여회, 시 80여편 그리고 음악 40여곡에 주절주절 이어진 사연들이 나를 말 많은 놈으로 비춰지게 하는 것 같았다. 2년의 기간에 비하면 작게 보이지만, 딱 보기엔 그런다.

메모장에 저장하며 쓰길 잘했던 것 같다. 무심코 글을 올리려 했더니, 로그오프가 되어버렸는지 사용권한이 없다는 페이지와 함께 텅 비어버렸다. 그럼 난 5시간을 더 앉아 있어야 했을지 모른다. 신사장의 긴 댓글을 보고 그런 불안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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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시라고

February 16, 2005
*.131.132.175

일부러 그렇게 쓴 것입니다.
실수 하나 꼬투리 잡으면, 다른 제 모든 것들도 실수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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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장

February 16, 2005
*.131.42.33

<<책 많이 읽고 글 재주 있는 사람은 무섭고 대하기가 두려운 사람이라고 했다. >>?

그런말 한적 없던것 같은데.. ㅡ.ㅡa (정말로..기억안난다. 그런말한 기억이)
만약 그런 말을 했더라도 부러움의 표현이 지났쳤던게지...

너의 고민을 가볍게 보는건 아니다만, 신경에 많이 날이 서있는거 같다.
누리관에 있는 런닝머신에서 10분만 달리고 땀좀 빼라~ 그리고 한 두어시간 푹 자라~!

날도 구린게 나도 땀좀 빼고 쉬어야 겠다.~
좋은 하루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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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

February 19, 2005
*.131.204.219

글을 참 잘 쓰네...

나 처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이성적으로 .. 머리속에 정리한 생각들을 글로 써 내려갈 줄 아는 재주를 가졌구나..

너는 담배를 끊었지만 난 그럴 엄두 조차 내지를 못한다. 끊을 수 없을 것이란것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교수님 말씀이 참으로 옳을 것이다. 한순간의 육욕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말씀... 나는 그런 욕구를 참아내질 못하는데.. 너는 그리도 잘 버텨 냈구나..

자주 너의 홈페이지에 들어오면서 글을 읽은 것도 처음이고 흔적을 남기는 것도 처음인것 같네.. 이 아름다운 너만의 공간을 부디 패하지 말고 오래토록 즐기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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