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Apr, 2010

[늑대가 산다-4] 일기일회(一期一會)

머시라고 조회 수 4267 추천 수 0 목록
친구가 속이 상하다고 한다.
오늘의 메신저 대화명은 ‘거지같은 이곳’.
회사 동료들이 윗사람에게 자신의 업무태도가 불량하다고 고자질했다고 한다.
불려가서 한소리 들었다고 한다.
친구는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면서
  “너무하지 않냐? 진짜 이럴 수가 있냐?”
너무하지 않냐고 나한테, 그것이 정답인데 정답이라고 자기한테 빨리 말해주라고 하는데,
  “그러게, 정말 그렇네”
밖에 다른 말이 안나왔다.

나는 사실 그 친구가 부러웠다.
업무시간에 웹서핑 후 나한테 메신저 채팅으로 이 상품은 어떤지,
방금 어떤 드라마나 책을 봤는데 너무 재밌다며 봤거나 읽었는지 물어보고
미니홈피에는 일과시간에 올린 사진으로 매번 새롭고
나나 다른 친구들 아이디까지 빌려서 사이트마다 시사회 신청하는 걸 보면, 나는 왜 이런 여유를 갖고 생활하지 못하나 아쉬움이 컸다.
일과시간에 메신저나 그 친구 회사전화로 자주 말을 걸어오면 그 친구의 여유에서 오는 안부가, 답해야하는 내게는 과중한 업무에 무게를 더하는 압박감이었다.

가끔 업무시간에 그 친구가 메신저에 없어서 뭔일인가 문자해보면
집에서 쉬고 있거나 밖에서 다른 친구를 만나고 있거나 쇼핑,
또는 다른 사무실에 놀러와 얘기하고 있다기도 하고
주말에 붙여 하루 더 쉬면서 여행 중이라고 했다.
부러움은 나도 그런 직장생활을 무척 해보고 싶다는 갈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친구의 넋두리를 듣다보니
친구의 직장 동료들까지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직장동료들도 그 친구의 메신저 대화명인 ‘거지같은 이곳’을 봤겠지?
메신저 창을 띄워 그 친구를 찾아봤다.

‘일기일회(一期一會)’
대화명이 바뀌어 있었다.
나는 그 친구가 마음을 다잡고 ‘일기일회’의 자세로 임하겠다는 것인지,
직장동료들에게 놓는 엄포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나는 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 넋두리가 주는 여운은 후자를 향해 있었다.

잠깐 덜하겠지만 부러운 마음은 계속될 것 같다.
이래저래 나는 좋은 친구가 아니다.

2년만에 쓰는 '늑대가 산다' 4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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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file

보시리

May 10, 2010
*.130.189.80

..부러움을 느끼시는 건.. 자유이시겠으나.. ^^;;
그건.. 아니지요. 안 그렇습니까요?
고자질한다고 친구분이 말했다지만, 그건 고자질없이도 다아~ 보인다던데요.

직장생활의 벌어지는 상황들에 조금 너무 숨차하시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머시라고님이 하시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설령 그것을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 그래요, 그렇게 하구 있구요, 이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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