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Aug, 2004

나는 왜 여자의 시선을 피하는가?

머시라고 조회 수 3508 추천 수 0 목록
개학을 했어도 공대 쪽은 방학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후배 녀석이 인문대 쪽은 거리에 사람이 장난 아니게 많다고 한다. 내가 개학을 느낄 수 있는 곳은 기숙사 식당 뿐이다. 너무 붐벼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다. 오늘 점심식사 때는 옆자리에 여자가 앉았다. 나의 소심함으로 얼굴도 못 쳐다봤지만, 형체와 머리카락 길이, 목소리로 가늠해 보건데 여자인 것 같았다.

'나는 왜 여자를 못 쳐다볼까,,?'
'쳐다보더라도 눈이 마주치면 금방 피해버리고 마는가,,,?'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솔직했는데, 시선을 피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인상을 준다는 말만 들었다. 이런 고민 속에 몇 달 전부터는 어떤 여자가 쳐다보더라도 시선을 피하지 않아 보듯 하는 연습을 했다.
'오빠, 왜 절 그렇게 째려보세요? 저한테 화 나신거 있어요?'
'.....'

중학교 때, 그 날이 오기전까지 나는 오래달리기에서 꼴찌를 면해본 적이 없었다. 고교 입학을 위해 연합고사는 봐야겠는데, 체력장의 마지막 코스인 오래달리기가 문제였다. 그동안 4바퀴도 힘들었는데, 체력장에서의 5바퀴는 완주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오래달리기도 잘하면서 성질까지 좋은 친구에게 3바퀴만 손 잡고 뛰어달라고 부탁했다.

한바퀴 반 정도부터 체육선생님은 나의 이런 작태를 확인하시고, 손 떼라고 외치기 시작하셨지만 친구는 3바퀴의 약속을 지켜줬다. 친구의 1등을 가로막으며 나는 완주에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가 복잡해져 버렸다. 어쨋든 내가 친구에게 부탁한 것은 완주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3바퀴까지의 그 친구 도움으로 4바퀴, 5바퀴는 그리 힘들지 않았다. 손 잡고 뛰어주는 것이 이렇게 좋은건지 몰랐다. 결국 5바퀴는 완주도 못하는 녀석이 정당하지 못한 핸디캡으로 4~5바퀴에서는 욕심이 났고, 결국 꼴지에서까지 벗어나버렸다.

결승점을 통과해 주저앉아 있는데, 그 애가 다가왔다. 그리고 나 덕분에 골찌로 들어오는 학생을 가리켰다. 꼴찌라는 것이 누군가 벗어나면,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야 한다는 것을 나의 욕심으로 망각해버린 것이다. 나의 비겁함을 경멸하며 내려보던 그녀의 눈빛,,, 그녀 친구들의 눈빛,,,  아마 이 사건으로 여자로부터 시선을 피하게 됐을까?

'씁!씁!후!후~'하며 조깅이 취미가 된 지금도 달릴 때마다 그 친구들 생각이 난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잘 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ㅁ^
'아싸비야~. 오빠, 달려~'

1
profile

보시리

October 06, 2005
*.202.174.198

..ㅎㅎㅎ..
마치 아다치 미츠루님의 작품을 보는 착각~^^*

기억 속의 그 눈빛이 그녀의 눈빛이 맞는 건가..? 라는 의문이 와락~
마치 크리스마스 캐롤의.. 그 어스름한 빛깔의 자신은 아니신 건지~..
다섯번째 바퀴는 암튼.. 어떤 면에서는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는 거네요..
끌려가기에서.. 끌고가기 모드로~.
List of Articles
profile 내게 어울리는 동물은? 3843 3843
Posted by 머시라고 July 31, 2018 - 01:38:39
0 댓글
profile 왕따 3497 3497
Posted by 머시라고 August 03, 2015 - 03:20:00
0 댓글
profile 그때는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다 3487 3487
Posted by 머시라고 August 03, 2015 - 14:38:06
0 댓글
profile 시월의 마지막 밤 3892 3892
Posted by 머시라고 April 18, 2017 - 22:38:03
0 댓글
profile 열녀문 나서며 3581 3581
Posted by 머시라고 January 16, 2018 - 14:10:34
0 댓글
profile 나를 키운 것의 8할.. 3481 3481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11:51:32
1 댓글
profile 2년전 메일을 꺼내며 3351 3351
Posted by 머시라고 January 16, 2018 - 10:21:08
0 댓글
profile 잠들지 못한 악몽 12971 12971
Posted by 머시라고 January 16, 2018 - 21:57:54
0 댓글
profile 좋은 이유 3089 3089
Posted by 머시라고 January 16, 2018 - 04:44:12
0 댓글
profile 도와주는 법 3253 3253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11:00:33
3 댓글
profile 나는 왜 여자의 시선을 피하는가? 3508 3508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17:35:34
1 댓글
profile 말라죽은 봉선화 3830 3830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03:48:45
2 댓글
profile 담배 안 피운지 석달의 문턱을 넘으며 4272 4272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03:27:27
1 댓글
profile 가난은 소외를 낳는다 3425 3425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04:58:18
2 댓글
profile 사토라레 3327 3327
Posted by 머시라고 January 16, 2018 - 01:45:28
0 댓글
profile 7년전의 기억 3356 3356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03:57:08
1 댓글
profile 일기쓰는 시간 3200 3200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wQ January 16, 2018 - 05:22:36
1 댓글
profile 영화관에 갔다. 3362 3362
Posted by 머시라고 Latest Reply by jinyizhixia May 16, 2018 - 23:43:11
2 댓글
profile 보기 싫게 바빠진 입 3434 3434
Posted by 머시라고 January 16, 2018 - 23:47:12
0 댓글
profile 머리 시원하게 손질한 날 4107 4107
Posted by 머시라고 January 16, 2018 - 23:28:23
0 댓글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