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Mar, 2011

정현종 - 방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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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객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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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게 되는 일의 무거움을 전해주는 시라 느껴집니다.
한동안 자주 오르지 못했던 산길 가에 폐가가 있습니다. 문고리라도 잡으면
바스라질 듯한 위태한 문짝 위로 깻잎머리 스타일로 잎들이 무성하였더니,
안 본 사이에 그 전에 보지 못했던 열매가 빼곡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 머루가 송이송이 영글어준 그 모습이
'상황에 따라 피고 열리는 것'이 아니라, '거기 나무가 있기에 그냥 열매를 맺는 것'
마치.. 친구의 의리를 일러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 비는 내리지 않았고, 기상예보에 휘둘릴 뻔한 것이 슬쩍 머쓱합니다.
닥쳐봐야 아는 일들이 있습니다.  가능하면 정확하게 수집하고 분석하여 예측해도
닥쳐봐야만 아는.. 그런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섣불리 지레 주저앉을 일도, 포기할 것도 아닙니다.
과거가 미래의 거울이어서 겁이 나는 순간도 있지만, 그래도 현재present는 내게
주어진 선물present이 맞다는 약간은 식상한 문구를 읊조리며, 내일도 비가 온다
는데, 여차하면 달아나겠습니다, 내 친구, 달~랑 해발 320미터 뒷산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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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