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May, 2007

김용택 - 그 강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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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강에 가고 싶다

   그 강에 가고 싶다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저 홀로 흐르고
   사람이 없더라도 강물은 멀리 간다.
   인자는 나도
   애가 타게 무엇을 기다리지 않을 때도 되었다.
   봄이 되어 꽃이 핀다고
   금방 기뻐 웃을 일도 아니고
   가을이 되어 잎이 진다고
   산에서 눈길을 쉬이 거둘 일도 아니다.

   강가에서는 그저 물을 볼 일이요
   가만가만 다가가서 물 깊이 산이 거기 늘 앉아 있고
   이만큼 걸어 항상 물이 거기 흐른다.
   인자는 강가에 가지 않아도
   산은 내 머리맡에 와 앉아 쉬었다가 저 혼자 가고
   강물은 때로 나를 따라와 머물다가
   멀리 간다.

   강에 가고 싶다.
   물이 산을 두고 가지 않고
   산 또한 물을 두고 가지 않는다.
   그 산에 그 강
   그 강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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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도는 사천蛇川과 함께 사랑방에 올렸던 시입니다.

그 강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에 갔습니다.

사실, 강은 저 홀로 흐르고, 홀로 멀리 갑니다.
내 마음의 강도 그렇게 저 홀로 두어야 했습니다.
들판을 한뼘한뼘씩 적시며 갈래갈래 지금도 흐르나니.

강을 흐르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내가 강으로 가야 강을 만나는 거라고 간주했습니다.
그래야 그 강물이 닿는 곳에 나도 이르른다고.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 공과 다르지 아니하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은 곧 공이며 공은 곧 색이니라.

아프다는 말, 믿는다는 말, 용서한다는 말, 잊는다는 말.

이런 말들을 생각해봅니다.
주관적으로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력은 할 수 있지만, 어떤 행동을 '뜻을 가지고' 노력하여 이행할 수는 있지만,
아픔은 아픔이 끝이나야 없어지고, 믿는다는 것은 마음 안에서 우러나와
믿기워지는 것이고 하는.., 그런 바램들입니다.
용서하는 뜻을 풍기는 언어와 행동을 할 수는 있어도
마음을 지켜주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고, 용서가 '되어져야' 하는
수동적인 열매입니다..

두 물이 만나는 강물 앞에 서보았습니다..
이미 속인들에게 유명한 곳이라서 아름다우면서도 인기척이 넘쳐나던 강가.

거기서 강물의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음'을 듣습니다.
단지斷枝된 뭉툭한 끝에서 보이지 않는 낭자한 피흘림..
온몸을 비틀어 삶을 배워나간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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