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May, 2007

함민복 - 긍정적인 밥

보시리 조회 수 7244 추천 수 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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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 밥

 詩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덮여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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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도 어제부터 밥 그릇을 비워가기 시작하신 할부님께서는
제게 그래도 한번 쯤.. 청계천 가를 거닐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하셨습니다.

을지로 3가를 빠져나와 어느 우동집에서 점심을 챙기고는
청계천을 따라 걷습니다.

황사가 떠왔다면서 주의를 하라는데.. 어떻게하면 되는지를 통 모르고.

그 예전에는 자주 오가던 책방들의 위축된 거리로 들어섰습니다.
온통 참고서와 학습서 투성이입니다.

'저.. 시집은 없으세요~?'

그 분은 저를 흘낏 대수롭지 않게 곁눈으로 훑다가, 마침 열 내며 대화하던 말꼬리나
마무리하고자 둘러앉은 사람들에게서 다소 떨어져 앉은 아저씨에게 묻습니다.

'어이~, 김씨. 시집 있어?'
절래절래.

이 단계를 한 두 번쯤 거친 후, 드디어 사람 두께의 두배나 될까말까한 좁은 공간으로
저를 밀어넣으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분을 만났습니다.
'쩌어기 구석, 묶인 보따리 중에 한번 찾아보던가.'

폐휴지의 댓가를 지불하고 나와 묶인 끈 풀 여유도 없이 앉아있는 시집들을
한 스무 권 남짓 만났습니다. 오~오.
몇 가지의 책으로 일곱 권을 챙겨가니 만원이랍니다.
표지에 뽀얗게 쌓인 무관심의 먼지로, 훑어보던 손은 곧 까매지고.

싱글거리는 제 뒷통수를 바라보면서 주섬주섬
문정희님도, 김초혜님도, 문병란님도.. 따라 나섭니다.

시 한 편에 삼만원, 시집 한 권에 삼천원이라.., 정말 그 정도라도 되기나 할라나..하는
싸아~하게 아픈 생각에다, 국밥보다도 더 넘치게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을 보태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바쁜 와중일수록 더욱 고파지는 시.
그건, 산소와 같이 나를 살게하는 힘이라는 걸..아실라나.


**잡소리
엊그제 저 시를 올렸던 것은 어느 분의 에세이집을 보면서였습니다.
오늘 집에 델꼬온 함민복님의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 올라있는
'긍정적인 밥'을 읽고는 얼굴이 빨개졌습니다..

'아늿~, 이기 뭐여.. 짜투리쟈너..'  ㅡ.ㅡ+~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제 게시물이 이동되어 그런가, 아님..올릴 때 암호를 허투루 입력했는가..
수정도 안되고 삭제도 안됩니다.. 오호 통제라~~.

암만해도 쥔장님을 번거롭게 해드려야 직성이 풀릴라나 봅니다..헐헐

**뒷 야기. 9-21-2007

한국에서 방문하는 분의 손에 선물로 들려온 것 중 허영만 선생님의 <식객>16권이
있었고, 그 중 부제,'망둥어'에 함민복 시인이 등장합니다.

강화도에 자리를 틀고 11년 째. 그는 물이 들고나는 중에 고기들이 들고나는 물의
골씨를 알아볼 줄 알고, 그 이름도 꿰고 있습니다. 성게자리, 앞뻘, 도래뻘.

물이 빠졌을 때 짚어지는 뻘밭의 촉감에서 지구의 속살을 느낄 줄 알고,
손바닥만한 망둥어가 파닥거리고 물에서 올라오면, 자신있게 횟칼을 들고 준비할
자신도 있습니다.
온 동네 사람 어느 누구에게나 낯설거나 거리낌없이 친절한 그는 뜬금없이 물어
오는 <모방과 표절의 상관관계>에,
"여기 루이비통 가방이 있는데, 와~! 루이비통하고 너무 똑같다~..하면 모방이고,
와~, 새로 수입된 명품인가봐~!. 하면 표절이야." 라고 대뜸 대답해 줄 수 있는
재기도 있습니다.

자신의 몸의 20%는 망둥어로 되어있을 꺼라며 웃는 망둥어 예찬가인 그는
10년 전에 끄적인 자신의 글 몇 줄을 빌려가 소설을 썼다는 자신의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망둥이는 6천만년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종류도 많아 세계적으로 무려 600종
이상이 기록되어 있지. 우리나라 전 해역뿐 아니라 극한대를 제외한 지구상 어떤 곳
에서도 서식한다. 염분이 높은 바다와 담수, 수온이 높은 곳, 낮은 곳 가리지않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적응력이 뛰어나다.

물 속에서는 아가미로 숨을 쉬고, 육지에서는 아가미방 내부에서 물과 공기를
섞어서 숨을 쉰다. 또 입 속과 목구멍에 있는 막에 많은 혈관이 있어서 이 막을
통해서 산소를 받아들이기도 한다.
습기가 있는 상태에서는 22시간에서 60시간 정도 물에 들어가지 않고도 살 수
있다.

망둥이가 그렇듯, 함민복도 여유가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방법이 있다.
내 노트가 필요한 이유는 네 글과 흡사한 글이 내 노트에 적혀 있어서지?

비록 똑같은 문장이 있어도 누군가 작가에게 표절이 아니냐고 물으면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노'라고 대답해야 해.
그건 모방도 표절도 아닌 창작인게야!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사랑받는 시인 함민복님에게 고마움을 전하면서 그냥,
있던 글에 마음이 섭섭하여 보태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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