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May, 2007

천상병 - 나무 (기다, 아니다)

보시리 조회 수 7291 추천 수 0 수정 삭제 목록


 


 나무 / 천상병

 

사람들은 모두 그 나무를 썩은 나무라고 그랬다. 그

러나 나는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니라고 그랬다. 그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 꿈 속에서 무럭무럭  푸른 하늘에

닿을 듯이 가지를 펴며 자라가는 그 나무를 보았다.

 나는 또다시 사람을 모아 그 나무가 썩은 나무는 아

니라고 그랬다.

 

 그 나무는 썩은 나무가 아니다.

 

 

 지난 2-3 일동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지냈습니다.

한 번의 소생술. 세 병의 영양 주사. 중환자실의 깊고 어두운 밤.

그 밤 속에 파삭하게 마른 껍질을 덮고 무의식 세계에 누워계신 할아버님.

지나치게 위축된 면역체계는, 우리 주변에 상존하는 바이러스조차

극복하지 못하여, 그 결과로 잠자리눈만하게 전신에 퍼져가는 맑은 물집들.

 

굳건하게 닫혀있는 눈과, 꺼릴 것 없이 열려있는 메마른 입.

뿌리 쪽으로 말려들어간 혀..

그 모습은 나의 어머니께서 그렇게도 사랑하시던 할아버님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오래 버티시지 못할 것 같습니다.

가족들을 부르십시요.

 

가능한한 담담하게, 그러나 의지를 가지고 전달한 의사님의 선언이었습니다.

그 선언이 아니더라도 누구든, 한 눈에 어두운 검정 옷자락 끝을

곧이라도 문간에서 볼 것 같았습니다.

 

오늘, 할부님은 그 검불같은 상체를 추스리고 앉으셔서

영광스런 식사를 하셨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겪으신 숟가락과의 투쟁.

 

오, 너 왔니..?

그래, 왔구나..

 

몇 일을 눈도 안 맞춰주시더니, 귀도 안 기울여 주시더니..

이제사 건네주시는 할부님 목소리가 하도 여려서..

마음이 그만, 물처럼 녹아 떨어졌습니다, 창 밖엔 비.

 

* 머시라고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5-25 03:07)

profile

보시리

May 24, 2007

login이 안되서 흠~,일루 왔습니다.. 모 어떠려나요..? ^^
profile

머시라고

May 24, 2007

으째서 안되는 걸까요? 조치가 필요하믄 말씀하이소. ^^
profile

머시라고

May 25, 2007

아까는 글을 못 읽고 댓글만 봤는데, 제 댓글이 무안하네요.ㅎㅎ
 곧이라도 문간에서 보일 것 같은 어두운 검정 옷자락 끝..
이 문장을 읽다가 어두운 방에서 섬뜩했습니다.
그 목소리, 재생 같았던, 마지막 몸부림.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70 김정란 - 눈물의 방 보시리 2014-05-05 9011
169 김수영 - 슬픔이 하나 보시리 2014-04-21 12562
168 백학기 - 오랜만에 쓴 편지 file 보시리 2013-11-13 6077
167 문태준 - 思慕 file 보시리 2013-10-19 8666
166 다카무라 고타로 - 도정 file 머시라고 2013-07-17 12555
165 김재진 - 보일러 file [2] 보시리 2012-06-26 15933
164 구상 - 그 꽃 보시리 2012-01-31 5517
163 김춘수 - 西風賊 file [1] 보시리 2012-01-02 15140
162 유재두 - 풀은 풀이라고 불렀으면 file 보시리 2011-10-24 17116
161 김종삼 - 어부 [10] 보시리 2011-10-01 12449
160 천양희 - 희망이 완창이다 보시리 2011-07-07 6167
159 정현종 - 방문객 file 보시리 2011-03-04 41645
158 류시화 - 들풀 [1] 머시라고 2010-05-04 10961
157 박제영 - 거시기 보시리 2010-03-20 19811
156 서안나 - 동백아가씨 보시리 2010-03-19 58439
155 최원정 - 산수유 [2] 보시리 2010-03-13 24385
154 이문재 - 노독 보시리 2010-02-28 56045
153 이기철 - 유리(琉璃)에 묻노니 보시리 2010-02-19 6682
152 나호열 - 비가 후박나무 잎을 적실 때 보시리 2010-01-16 8798
151 박남준 - 흰나비 떼 눈부시다 보시리 2009-12-17 7889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