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Apr, 2005

백석 - 나 취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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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취했노라
                노리다께 가스오(則武三雄)에게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原文>
われ 醉へり
われ 古き蘇格蘭土の酒に醉へり
われ 悲みに醉へり
われ 幸福なることまた不幸なることの思ひに醉へり
われ この夜空しく虛なる人生に醉へり

                        『압록강』(1943)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와사회,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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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다.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로
지기지우(知己之友)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찾아보니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란다.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며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거문고를 뽀사분지 알았는데, 그냥 줄만 끊었단다..

노리다께 가스오는 백석에게 백아의 종자기 같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 전하는 시에 취한다.
이 밤의 허무한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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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다께 가스오는 일본 시인으로,
그 누구보다 먼저 백석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이었다.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정작 일본 후꾸이현(福井縣) 최고의 시인이기도 했다.
노리다께는 일제시대 약 십오년간을 조선에서 보내며
많은 조선 문인들과도 친분을 쌓았는데,
백석을 제외는 모든 문인들에 대해서는 매우 낮게 평가했다.
그는 1942년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에서 평론가로 활동하였으며,
『압록강』(1943)이라는 책을 동경에서 출간하여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profile

보시리

May 05, 2005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말대로, 노리다께 가스오는 백석에게 지음이었다는데..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가 되기까지 그들은 어떠한 시간들을 공유 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소리를 알아 들으려면.. 그 소리는 어떻게 냈는지.
그 소리를 듣기를 두 사람이 얼만큼이나 절실하게 바랬는지..
처음에는 좀 티격태격도 하다가 친해진 건지..
그냥 처음 본 순간부터 마음이 확 열렸는지..

지음은 어느 한편만 바래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은데,
두 분은 정말로 ..지기지우(知己之友)..서로를 잘 이해해 주는
관계였나 봅니다..
일단.. 지음이라는 마음이 한번 생기면..그 마음은 쉽게 스러지지 못하겠지요..
정말로 소중한 벗으로, 아마.. 죽는 순간까지 마음 속에서 그렇게
서로를 아끼고 있었겠구나..
평생에 한번이라도 그렇게 불린다면, 그건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행복이다..

오늘은 어린이 날이라는데..그것두 모르고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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