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취했노라
노리다께 가스오(則武三雄)에게
나 취했노라
나 오래된 스코틀랜드의 술에 취했노라
나 슬픔에 취했노라
나 행복해진다는 생각에 또한 불행해진다는 생각에 취했노라
나 이 밤의 허무한 인생에 취했노라
<原文>
われ 醉へり
われ 古き蘇格蘭土の酒に醉へり
われ 悲みに醉へり
われ 幸福なることまた不幸なることの思ひに醉へり
われ この夜空しく虛なる人生に醉へり
『압록강』(1943)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시와사회, 59페이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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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지음知音이라는 말이 있다.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로
지기지우(知己之友)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찾아보니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의 명수 백아伯牙와
그의 친구 종자기鍾子期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란다.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며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거문고를 뽀사분지 알았는데, 그냥 줄만 끊었단다..
노리다께 가스오는 백석에게 백아의 종자기 같은 친구였다.
그런 친구에게 전하는 시에 취한다.
이 밤의 허무한 인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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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리다께 가스오는 일본 시인으로,
그 누구보다 먼저 백석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람이었다.
<뛰어난 시인 백석, 무명의 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그는
정작 일본 후꾸이현(福井縣) 최고의 시인이기도 했다.
노리다께는 일제시대 약 십오년간을 조선에서 보내며
많은 조선 문인들과도 친분을 쌓았는데,
백석을 제외는 모든 문인들에 대해서는 매우 낮게 평가했다.
그는 1942년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에서 평론가로 활동하였으며,
『압록강』(1943)이라는 책을 동경에서 출간하여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