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Mar, 2005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머시라고 조회 수 7065 추천 수 0 목록
□□□□□□□□□□□□□□□□□□□□□□□□□□□□□□□□□□□□□□

겨울 강가에서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 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 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그리운 여우' 중에서
□□□□□□□□□□□□□□□□□□□□□□□□□□□□□□□□□□□□□□

다시 겨울이 찾아올 때쯤 눈을 기다리며 올려야지 하고 있었다.
이미 '봄의 계절' 3월도 닷새 후면 옛이야기가 되어버리는 날,
학원 다녀와 기숙사에서 아침을 먹고 나오는데 눈발이 휘몰아쳤다.

다른 모든 감상을 제쳐두고 이 시가 떠올랐다.
애송하는 암송시이면서도 두번의 겨울이 지나도록,
그리고 보름전 3월의 눈 내리는 풍경에서도
나는 망설이고 있었다.

내리는 눈을 대하는 순간, 아무리 봄이지만
과거, 겨울 강가의 풍경을 완벽하게 재현한 세트장이라도 갖춘 듯 했다.
이 시를 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도 주어진 것처럼...

철없이 내리는 눈발에게
강은
단지 안타까움 때문이라는 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까지
논리적 잣대만 드리웠던 내가
애송할 자격이 있나 두려웠다.

샤워를 마치고 실험실에 나올땐 이미 바람만 무성했었다.
이 글을 마치려 하는데, 창밖에 다시 눈이 내린다.

하늘은 파래졌다 하애졌다 한다.
파랄땐 강물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하애질땐 강에 살얼음이 깔리는 듯 하다.

profile

보시리

March 31, 2005

<..하늘은 파래졌다 하애졌다 한다.
파랄땐 강물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하애질땐 강에 살얼음이 깔리는 듯 하다. >..감상중..^^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70 구상 - 그 꽃 보시리 2012-01-31 5517
169 도종환 - 해마다 봄은 오지만 박찬민 2003-07-12 5865
168 황다연 - 제비꽃 [4] 박찬민 2003-06-23 5942
167 한승원 - 새 박찬민 2003-08-29 5996
166 백학기 - 오랜만에 쓴 편지 file 보시리 2013-11-13 6077
165 도종환 - 꽃다지 보시리 2005-01-15 6096
164 천양희 - 희망이 완창이다 보시리 2011-07-07 6167
163 최옥 - 그대에게 닿는 법 보시리 2005-04-12 6216
162 유지소 - 별을 보시리 2007-05-14 6235
161 유지소 - 늪 보시리 2007-04-07 6238
160 제프 스완 - 민들레 목걸이 보시리 2005-01-04 6268
159 신경림 - 가난한 사랑의 노래 file [2] 머시라고 2004-03-17 6289
158 주근옥 - 그 해의 봄 file 보시리 2007-04-15 6347
157 안도현 - 강 [2] 머시라고 2004-12-16 6381
156 심 훈 - 그 날이 오면 머시라고 2003-06-02 6428
155 남유정 - 마음도 풍경이라면 보시리 2005-02-27 6453
154 김재진 - 너를 만나고 싶다 보시리 2005-01-18 6465
153 천상병 - 강물 머시라고 2004-03-15 6475
152 정호승 - 물 위에 쓴 시 [1] 보시리 2005-02-05 6485
151 정호승 - 나뭇잎을 닦다 [1] 머시라고 2004-10-20 6489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