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Feb, 2004

류시화 - 나무

머시라고 조회 수 14228 추천 수 0 목록
□□□□□□□□□□□□□□□□□□□□□□□□□□□□□□□□

나 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 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 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면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 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 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 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 때면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 해주었다

□□□□□□□□□□□□□□□□□□□□□□□□□□□□□□□□

의사소통 수단이 말이 아니었다면,, 글이 없었다면
좀 더 좋았을거란 생각을 가끔 해본다
입은 새나 양의 그것과 흡사한 역할만 하고,,

언어가 아니었다면,,
그 사람의 마음을 눈이나 피부감촉으로 느낄 수 있을지 모른다
말 못하고 있었던 그를 더 이해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스쳐가는 바람의 사연도 엿들을 수 있을지 모른다.
물결치는 강물이 들려주는 노래소리가 들릴지 모른다.

외롭고 기나긴 밤,, 창문을 열고,,
별들이 들려주는 옛이야기에 잠들지 모른다.

무덤에 피어난 꽃이 전해주는
그의 안부가 들릴지 모른다.

심심한 사막은 보이지 않을지 모른다.

profile

바스락

January 26, 2005

이제 쪼~금-병아리 눈물 만큼..- 이해가 되네요, 왜..이슬, 바람, 햇빛에게는 의사소통의 권리를
주지 않느냐고..투정(?!)하신 심사를~..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50 유지소 - 박쥐 file 보시리 2007-07-28 7094
49 나희덕 - 입김 file 머시라고 2005-01-20 7076
48 안도현 - 제비꽃에 대하여 [1] 보시리 2005-05-12 7075
47 김용택 - 그리움 박찬민 2003-05-27 7074
46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1] 머시라고 2005-03-24 7067
45 안도현 - 어둠이 되어 [2] 박찬민 2003-08-19 7010
44 도종환 - 어떤 편지 머시라고 2004-02-18 7007
43 윤동주 - 참회록懺悔錄 머시라고 2004-12-05 7004
42 안도현 - 별 머시라고 2004-04-16 7000
41 문정희 - 고독 보시리 2007-04-29 6975
40 김정란 - 기억의 사원 file [2] 보시리 2007-07-11 6963
39 안도현 - 섬 [1] 보시리 2007-05-06 6961
38 천양희 - 생각이 사람을 만든다 [2] 보시리 2008-01-21 6942
37 홍윤숙 - 과객 file 보시리 2007-06-18 6871
36 고정희 - 사랑법 첫째.. [3] 보시리 2005-02-21 6861
35 나희덕 - 사라진 손바닥 머시라고 2005-01-10 6848
34 김정란 - 눈물의 방 보시리 2007-06-01 6839
33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박찬민 2003-06-10 6827
32 천양희 - 좋은 날 보시리 2007-05-21 6738
31 박남수 - 아침 이미지 보시리 2007-04-30 6726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