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Jun, 2003

이문재 - 거미줄

박찬민 조회 수 9521 추천 수 0 목록
******************************************

[ 거미줄 ]

거미로 하여금 저 거미줄을 만들게 하는
힘은 그리움이다

거미로 하여금 거미줄을 몸 밖
바람의 갈피 속으로 내밀게 하는 힘은 이미
기다림을 넘어선 미움이다 하지만
그 증오는 잘 정리되어 있는 것이어서
고요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팽팽하지 않은 기다림은 벌써
그 기다림에 진 것, 저버리고 만 것

터질 듯한 적막이다
나는 너를 알고 있다

******************************************

새벽 산 길을 걷는다.
자기가 만든 거미줄이 적외선 감지기라도 되는 냥 뽐내다가
이슬의 쌀쌀촉촉함에 발각된다.

이제는 물방울 머그믄 아름다움이라도 뽐내야 한다.

산행을 가로막는다.

어제 누군가 이 길은 걸었다면
거미줄이 나를 가로막지 않았을까?

어제 누군가 이 길을 걸었어도
주위 거미들이 귀뜸해주지 않았다면
누군가 겁없이 막아설 것이다.

profile

흠흠

June 06, 2003

이슬의 쌀쌀촉촉함에 발각되다라,,,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70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12] 보시리 2005-04-21 59469
169 서안나 - 동백아가씨 보시리 2010-03-19 58614
168 이문재 - 노독 보시리 2010-02-28 56218
167 이문재 - 농담 [2] 보시리 2009-02-17 53259
166 정현종 - 방문객 file 보시리 2011-03-04 41647
165 황지우 -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 file [11] 보시리 2008-04-26 33639
164 정호승 - 미안하다 file [4] 머시라고 2004-12-17 30330
163 김옥림 -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4] 머시라고 2005-06-23 27182
162 도종환 - 우기 보시리 2005-05-09 25155
161 최원정 - 산수유 [2] 보시리 2010-03-13 24386
160 장이지 - 용문객잔 file 보시리 2009-03-22 21019
159 고정희 - 상한 영혼을 위하여 [3] 보시리 2005-02-19 19970
158 박제영 - 거시기 보시리 2010-03-20 19811
157 박노해 - 굽이 돌아가는 길 보시리 2005-05-14 18893
156 이정하 - 사랑의 우화 머시라고 2003-04-09 17551
155 원태연 - 한 여자를 사랑했습니다 머시라고 2003-04-02 17278
154 유재두 - 풀은 풀이라고 불렀으면 file 보시리 2011-10-24 17117
153 정호승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file [1] 머시라고 2004-04-03 17026
152 예이츠 - 이니스프리의 호수섬 file [1] 보시리 2009-09-24 16980
151 최형심 - 2250년 7월 5일 쇼핑목록 file [2] 보시리 2008-10-13 16972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