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Apr, 2003

황동규 - 즐거운 편지

머시라고 조회 수 7426 추천 수 0 목록
*********************************************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

언제부턴가 어두운 밤에 쓰는 편지보다
매력적인 배경이 생겼다.

하루의 시작이 나를 흔들어 깨운것처럼
일찌거니 눈이 떠질때면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고 싶다.

때는
차오르는 일출, 태양의 저 반대편
밤새 나를 감싸돌던 어둠이
결국 태양에게 쫓겨날 것이면서,,,

끝끝내 태양과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 안간 힘을 쓰며
얕은 어둠이 깔리우는 그런 시간 편지쓰기,,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며
고통의 안주거리로 위안 삼아 술을 마시겠는가

허탈하게 하루를 보내고
질질끌린 발걸음으로 기어들어온
텅빈 방구석에 쳐박혀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선
편지를 쓰고 싶다.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110 박영신 - 생각의 나무 보시리 2007-04-26 7405
109 신현득 - 칭찬 보시리 2007-04-20 7347
108 박상순 - 네가 가는 길이 더 멀고 외로우니 보시리 2007-04-19 15902
107 주근옥 - 그 해의 봄 file 보시리 2007-04-15 6347
106 박제영 - 가령과 설령 보시리 2007-04-10 15386
105 유지소 - 늪 보시리 2007-04-07 6239
104 나희덕 - 밥 생각 머시라고 2006-03-05 7095
103 이성복 - 그리운 입술 머시라고 2006-01-01 8097
102 안도현 - 그대에게 가는 길 머시라고 2005-12-24 9025
101 안도현 - 겨울 강가에서 머시라고 2005-11-04 7915
100 김옥림 - 나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만남이고 싶다 [4] 머시라고 2005-06-23 27183
99 나희덕 - 오 분간 머시라고 2005-06-18 12192
98 박우복 - 들꽃 편지 file 보시리 2005-06-10 16017
97 류시화 - 나비 [2] 보시리 2005-05-20 8901
96 박노해 - 굽이 돌아가는 길 보시리 2005-05-14 18893
95 안도현 - 제비꽃에 대하여 [1] 보시리 2005-05-12 7075
94 도종환 - 우기 보시리 2005-05-09 25166
93 백석 - 멧새 소리 file 머시라고 2005-05-09 13705
92 류시화 - 패랭이 꽃 [4] 보시리 2005-05-08 15275
91 백석 - 나 취했노라 file [1] 머시라고 2005-04-26 14838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