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Nov, 2005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머시라고 조회 수 3107 추천 수 0 목록
가는바람이 불어왔겠지.
등나무 잎들이 흔들렸다.
원재는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리를 올려봤다.
지난봄, 그 많았던 보랏빛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보랏빛들이 저물고 나면 여름이 찾아오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 섰다.
그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그대로 멈췄다.
원재는 멍하니, 마비된 듯한 표정으로,
이제는 사라진, 그 봄날의 정경을, 바라봤다.
등나무의 색은 초록빛이고 보랏빛이고 노란빛이고 붉은빛이다.
꽃향기 머금은 가는바람이 원재와 태식의 머리 위로
보랏빛 꽃등을 떨어뜨리며 지나간다.

                  - 김연수 소설집『내가 아직 아이였을때』 p.253
                                         비에도 지지말고 바람에도 지지말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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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리

November 08, 2005
*.231.237.168

...정말 어떤 누군가가 있어 말해 줄 수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어른이 되는지..

어느 새 서서 등나무를 올려다 보니 보랏빛이 모두 스러져가고 없듯..,
허둥댐 속에 어느 새.. 소년을 잃어버리고 만 어른은
"아름다움을 미처 아름다움인지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소년의
그 가닥 잡히지 못한 슬픔이 너무 안타까와 눈마저 매워 오는 걸..

이제는 주름앉은 젖은 눈, 아버지의 모습으로 소년에게 돌아 마주서서
끊임없이 꼭꼭 눌러, 되뇌어 일러주었을 것 같은 말...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 내 마음에도 그 새 꼭꼭 새겨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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