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원에 도착했다.
원숙하다 못해 곰삭아 늙어버린 중국 장인의 솜씨,아니, 중국인의 품성,
아니, 중국 그 자체가 지붕마다 이끼를 타고 흘러내리는 거대한 정원
이화원.
서태후가 잘못한 것일까?
기왕에 질 전쟁으로 부서져버릴 군함을 만들 바에는 이렇게 문화재를
보수해서(?) 후손들이 먹고 살 수 있게 해놓은 것이 결과적으로
낫지 않았겠느냐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향나무가 있는 우아한 연못을 지나 건륭제가 팠다는
인공호수로 향했다. 인공호수라....
난 인공호수라면 커야 서울 운동장만 하겠거니 생각했다.
이화원을 찍은 사진에도호수는 귀퉁이만 조금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개를 돌려 이화원을 보자 그냥 "악!!"소리가 났다.
"이,이게 호,호수야~?"
끝이 가물가물한 바다가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주,중국 놈들이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만리장성을 보고 꽤나 단련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기가막힌 심장은 별로
면역이 되지 않는가 보다..
포크레인도 없던 그 시절에 삽으로 저 바다를..~!!
그 호수에서 사람들이 뱃놀이를 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공사장에서 바글바글 작업을 하다 다치고 죽고 했을
옛 중국 백성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수나라 양제의 대 운하 공사도 그랬겠지.
북경에 물이 모자라 호수를 팠다는 말도 있지만, 도대체 이렇게 크게
파야하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크기에 대한 그들의 컨셉을 이해한 것은 중국을 한참 다녀보고
난 뒤의 일이다.
호수옆으로 엄청나게 긴 회랑(복도)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는데,
여기에 당대의 산수화 대가들이 그림을 그려 놓으면 서태후가 복도를 지나며
감상했다 한다. 서태후는 이 복도를 지나다가 마음에 드는 남자가 있으면
불러서 같이 그림을 감상하며 거닐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밤, 모셔라(?)"
그러고 나면 다시는 그 남자를 볼 수 없게 된다고...
하루에 세 번 비단 버선을 갈아 신었다는 서태후.
빅토리아 여왕도 자신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살지 못했다고 자부한
서태후 얘길 뒤로하고 중국 그림에 나올 만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화원을
나왔다..
- 박재동님의 실크로드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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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렇게 하고 이화원 스케치가 나오는데..
한강 변, 산책로에 서서 바라보는 한강 규모의 장면이 나옵니다..
삽으로 판...^^*;;
(근데.. 고러고 살믄.. 증말 행복 할까~? 정말일까~?? 궁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