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Mar, 2010

아버지

머시라고 조회 수 3477 추천 수 0 목록
아버지, 너무 힘듭니다.
너무너무 무섭습니다.
제가 개한테 물린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는데다 독까지 있다는 뱀을 제일 두려워했나봅니다.
아버지랑 성묘가던 날이 생각납니다.
동생들도 육촌도 집에서 쉬는데
당숙이랑 저만 데리고 갔던 게 불만이던 날.
내려오는 길에 뱀이 나올 것 같은 구멍을 만나던 날.
저는 두렵지 않았습니다.
기계창고에 몇 병 정도 놓여있는 뱀주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뱀이 나타나도 아버지가 계셔서
나올테면 나와보라는 생각이 간절했던 적도 있습니다.
선두굴을 혼자서 다녀오던 날.
그 뱀이 자전거 바퀴 사이로 지나가던 날.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자전거를 버리고 도망치던 제 뒤통수는
아버지가 없는 세상은 참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번뜩였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은
땅속에 묻혀 계신 아버지께서 쥐어주신 곳이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근데 지금 너무 힘듭니다.
개보다 뱀보다
사람이 너무 무섭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힘을 주십시오.
죄송합니다.
몇 해 전 동생들이랑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성묘갔다 내려오는 길에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얼어붙은 제 기다림에 뱀은 지나갔지만
뱀이 또 나타날까봐
산을 내려오는 내내
발걸음 내딛을 때마다
내 앞길을 그렇게 자세히 살핀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두려움에 다음 추석에는 성묘조차 가지 않았습니다.
죄송하지만
아버지, 너무 그립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sort
87 머리 시원하게 손질한 날 머시라고 2004-06-28 4107
86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 머시라고 2004-06-25 3511
85 담배를 안 피우는 이유,, 머시라고 2004-06-23 3774
84 너무도 완벽한 당신 .. [1] 머시라고 2004-06-18 4055
83 비 내리는 날의 결벽증 머시라고 2004-06-17 3367
82 전화통화 습관 [1] 머시라고 2004-06-15 7414
81 종업원 만족과 고객 만족의 우선순위 머시라고 2004-05-30 3400
80 친하다 멀어지는 사람들 머시라고 2004-05-26 3489
79 남긴 음식은 저승가서 다 먹어야 한다.. 머시라고 2004-05-21 3438
78 친구를 찾아서 머시라고 2004-05-07 3427
77 진흙 속의 보배 머시라고 2004-04-11 3327
76 그런 날,, 머시라고 2004-04-08 3404
75 우선순위 머시라고 2004-04-05 3394
74 상처주기 머시라고 2004-03-29 3608
73 혼란 머시라고 2004-03-24 3539
72 탄핵 머시라고 2004-03-12 5926
71 부족함 머시라고 2004-03-11 3443
70 경칩 지난 밤. 머시라고 2004-03-06 3478
69 얻은 것과 잃어가는 것,, 머시라고 2004-02-29 3289
68 졸업식 머시라고 2004-02-26 3408
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