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May, 2014

김정란 - 눈물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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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의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작고 작은 방


그 방에서 사는 일은 

조금 춥고
조금 쓸쓸하고
그리고 많이 아파


하지만 그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방바닥에
벽에
천장에
숨겨져 있는
나지막한 속삭임소리가 들려


아프니? 많이 아프니?

나도 아파 하지만
상처가 얼굴인 걸 모르겠니?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내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조금 더 오래 살다보면
그 방이 무수히 겹쳐져 있다는 걸 알게 돼
늘 너의 아픔을 향해
지성으로 흔들리며
생겨나고 생겨나고 또 생겨나는 방


눈물 속으로 들어가 봐
거기 방이 있어


크고 큰 방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김정란시인의 '용연향'(2001)에 수록된 시입니다.


용연향이란, 고래가 품고 있는 '사리'같은 것입니다.
위키에 의하면, 향유고래의 대장 안에 발생되는 이물질인데, 
이것이 동양적인 깊은 향을 발하는 향수의 주재료로 사용이 된답니다.


누구의 몸에서는 이물질이고, 자연으로 보자면 배설물인데, 
그것이 사용자의 손에 들어가면 귀한 물질이 된다..


이 제목을 택한 시인의 '용연향'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몇 종류 안되는 동물성 향료의 하나. 
말향고래 창자 속에 들어있는 이물질이 고여 썩은 뒤 
만들어진 값비싼 향료. 
향기 성분은 전체의 1 %에 불과하다.
그대로는 향기가 없으나, 다른 향료와 작용하여 
영속적인 향기를 낸다.>


그대로는 향기가 없으나, 다른 향료와 작용하여
영속적인 향기를 낸다..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온 이 시점에서, 
지금부터 무엇과 어떻게 섞이는가에 따라
삶이 영속적인 향기를 품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비추어보는 얼굴
네가 나의 천사가
내가 너의 천사가 되게 하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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