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우면 그립다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불가능 속에서도 한줄기 빛을 보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좋다
다른 사람을 위해 호탕하게 웃길 줄 아는 사람이 좋고
화려한 옷차림이 아니더라도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좋다.
바쁜 가운데서도 여유를 부릴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기 자신을 지킬 줄 하는 사람이 좋다.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부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책을 가까이하여 이해의 폭이 넓은 사람이 좋다.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잘 먹는 사람이 좋다.
철따라 자연을 벗삼아 여행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손수 커피 한 잔을 탈 줄 아는 사람이 좋다.
이웃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하루 일을 사작하기에 앞서 기도할 줄 나는 사람이 좋다.
하루 일을 마치고 뒤돌아 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줄 줄 아는 사람이 좋다.
때에 맞는 적절한 한마디로 마음을 녹일 줄 아는 사람이 좋고
외모보다는 마음을 읽을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 좋다
친구의 잘못을 충고할 줄 하는 사람이 좋고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할 줄 하는 사람이 좋다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줄 하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고
새벽공기를 좋아해 일찍 눈을 뜨는 사람이 좋다
적극적인 삶을 살아갈 줄 아는 사람이 좋고
남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좋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질 줄 하는 사람이 좋고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자족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좋다.
우연히 이 글이 기재된 작은 계간지를 보았습니다.
헨리 나우엔의 글이라고 되어있지만, 인터넷의 조사로는 어떤 스님의 작품이라는 곳도 있고,
지인의 글이라고 옮긴 분도 있고, 심지어 본인이 쓴 것처럼 올린 분도 있었습니다.
헨리 나우엔의 글투같지는 않다싶기도 하여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어, 그 글을 영어로
거꾸로 바꾸어 찾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암튼.
새해 첫 달을 절반 꺾어 보낸 이 시점에서 읽는 동안 한 구석에서 은근히 샘이 피어오르기도 하고
오기가 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
이런 사람이 좋다고 열거하는 것에서, 이런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보자.. 도무지 안되더라도
한번 시도라도 해보자는 은근한 저의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짐 캐리의 YES MAN을 보았습니다.
짐 캐리라는 배우의 비호감에도 불구하고, costco에서 영화관람권을 사서 지갑에 넣어놓았다가,
기회는 챤스로 가는 그 일. 그 일이 오늘 벌어져서였습니다.
채팅을 하다가 그냥.. 영화보까~? 영화 보자..가 되어 뜬금없이 나섰으므로, 영화 선택의 폭은 좁았습니다.
경제 한파를 실감하게 하는 극장, 멀티플렉스 극장안은 아주 한산합니다.
예스 맨을 상영하는 200 여석 소극장에서 관람객은 우리 셋을 포함하여 총 10 명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저녁 외식과 팝콘, 콜라 대신 한국 마켙에 들러서 김밥과 과자, 음료수를 샀습니다.
그리고는 극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김밥을 집어먹는데.. 지난 10 년간 수도 없이 내려갔던
로스앤젤레스 여행이 기억났습니다..
디즈니랜드까지도 약식의 김밥을 싸서 가지고 들어가던 그 극성..
(워낙.. 규정 상으로는 그 안에서 사먹게 되어있지만, 파는 음식이 너무 부실한 관계로, 즐겨
바보김밥을 싸가서 몰래 먹고는 했습니다.)
예스 맨은 그동안 짐 캐리가 보여왔던 그 범주를 그다지 넘어서지 못하는 영화였습니다.
과도한 몸부림 (액션), 과장, 극단적 전개 등등.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의식을 뚫고 들어온 것은 그.. "YES" 라는 개념의 공해, 독성이었고,
영화는 그것을 찝어내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유로와지고자 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긍정적 사고' 세미나를 참석한 이 후,
모든 일에 예스라고 하지 않으면 닥쳐올 것 같은 오멘의 징크스에 구속되고 얽매입니다.
그것이 논리나 이성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 심성의 심약함. 군중의 우매함.
어쩌면, 그 자신, 삶의 아주 후반부까지도 인간의 본성에 괴로와 했다던 사제인 헨리 나우웬
(앙리 누앙..?)이 조근조근 써내려간 이 검소한 인간 규격은 어쩌면 꿈Dream 같은 꿈vision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작게 비겁하고, 작게 치사하고, 작게 이기적이고, 작게 착하고, 작게 게으릅니다..
나와 관계없는 억울한 일에 한하여 핏대를 올리지만, 막상 내 손을 푹 담가 적시는데는
끝없이 망서리는.
그런 소시민小心人이 여기 한 마리 살고 있습니다.
담대한 No보다 눈치밥 Yes가 더 편한 쪼잔이가 한 마리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