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식당에서 우유를 바통처럼 거머쥐고 열라 뛰었다.
오늘도 등교시간을 준수하는 착한 실험실원이 되겠다는 노력 앞에
바람은 등 떠밀고, 겨드랑이 털은 날개 짓하는 아침.
지구는 알아서 기울어져, 향하는 곳마다 내리막길이요.
계단은 스프링 악보의 쿠션 악기 연주로
내딛는 발걸음마다 탄력있는 안부인사.
목적지인 출입문을 향해 슬라이딩~~~ 쎄~입!
아싸라비야 제공시보 아홉~씨를 알립니다. 삐~!
착한 모습으로 성공적인 등교를 완수하고 자리에 앉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메일을 확인하는데, 가슴이 싸늘해졌다.
협박 메일인가?
메일 제목 : 박찬민님, 4주 동안 10Kg 책임지고 빼드립니다.
이건 나를 죽이겠다는 말 아닌가.
지난 명절, 몇 년 만에 동생 친구 민혁이
어릴 적에는 예상할 수 없었던 육중한 덩치를 들이대며 집에 찾아왔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 몸둥이로 화제가 옮겨졌다.
“못 쓰겄다. 살 좀 쩌라.”
이런 이야기만 들어온 내게 그가 말했다.
“형처럼 먹어도 안찌는 시스템이 너무 부러워요.”
부럽다? 부러운 시스템?? 아닌 것 같다.
키에 비해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곤 있지만
이 시스템 하에서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남자라면 감수해야 하는 버거움이 있다.
“너무 말랐네. 못 쓰겄네. 살 좀 쩌야 쓰겠네.”
어디다 쓸라고 쓰네 못쓰네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는 양반이다.
항상 자리에 뭔가 먹을 것이 놓이면
무조건 부러워할 정도로 잘 먹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배가 불러도, 속이 안 좋아도, 선호하는 음식이 아니어도,
기분 상으로 전혀 입맛이 없더라도…
“그런께 살이 안찌제. 그렇게 입이 짧아서리, 쯧쯧…”
이나
“가리지 말고, 마~악 먹어도 살이 찔까말까 할 텐데..”
와 같은 말을 음식 대신 먹고 싶지 않다면 그래야 한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일지라도…
열 받아도 그런 자리마다
내가 잘 먹는 것에 대해 칭찬했던 사람을 대표하여,
스무살 근처에서 몇 개월간 아르바이트했던 춘천닭갈비집
사장님 내외분과 아주머니들께 확인서를 받아 들이댄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니다.
먹을 때 내 모습을 본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며
내 먹는 모습이 어떻드냐, 많이 잘 먹는 것 같아 보이드냐,
평가한다면 몇 점 줄 수 있겠느냐, 물어서 받아낸 점수에 싸인을 곁들여
산출된 평균을 매일매일 높이려 노력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언제든 맛있게 잘만 먹으면 아무 문제없이 다 해결되나?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잘 먹는데, 왜 살이 안찔까?”
이때부터 언급되는 것이 아마 <성질론> 일게다.
성질이 차분하지 못하고, 민감해서, 날카로워서, 더러워서, 급해서,
근심에 휩싸여 항상 초조해서 등등으로
나 같이 살찌려고 힘쓰는 뼈다귀들을 몰아 부치는 얍실하지 못한 다수 앞에
살 안찌며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기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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