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Apr, 2003

황동규 - 즐거운 편지

머시라고 조회 수 7424 추천 수 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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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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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어두운 밤에 쓰는 편지보다
매력적인 배경이 생겼다.

하루의 시작이 나를 흔들어 깨운것처럼
일찌거니 눈이 떠질때면
멍하니 책상 앞에 앉아 편지를 쓰고 싶다.

때는
차오르는 일출, 태양의 저 반대편
밤새 나를 감싸돌던 어둠이
결국 태양에게 쫓겨날 것이면서,,,

끝끝내 태양과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 안간 힘을 쓰며
얕은 어둠이 깔리우는 그런 시간 편지쓰기,,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며
고통의 안주거리로 위안 삼아 술을 마시겠는가

허탈하게 하루를 보내고
질질끌린 발걸음으로 기어들어온
텅빈 방구석에 쳐박혀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선
편지를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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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면 길을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