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Dec, 2009

정끝별 - 그만 파라 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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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파라 뱀 나온다

   속을 가진 것들은 대체로 어둡다
   소란스레 쏘삭이고 속닥이는 것들은
   죄다 소굴이다.

   속을 가진 것들을 보면 후비고 싶다.  
   속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속을 끓이는지 속을 태우는지
   속을 푸는지 속을 썩히는지
   속이 있는지 심지어 속이 없는지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다.

   속을 알 수 없어 속을 파면
   속의 때나  속의 딱지들이 솔솔 굴러 나오기도한다.
   속의 미끼들에 속아 파고 또 파면  
   속의 피를 보게 마련이다.  

   남의 속을 파는 것들은 대체로 사납고  
   제 속을 파는 것들은 대체로 모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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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시를 보았을 때엔 자꾸 삐져나오는 웃음에 입을 오물거렸습니다.
쥔장님이 아주 오래 전에 꾸었던 뱀 꿈이 생각나서요.
안도현 시인의 시를 올리시곤 이 말 저 말 오가다가 끝내 뱀 꿈으로 마무리하셨더랬지요. ^^

즐거운 기억입니다.

사실, 티피컬한 AB형인 저는 제 속을 보여주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아서 그런지
남의 속도 파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 시에서도 그러네요. 자꾸 파면 피 나온다고. ㅎㅎㅎ

저마다 속사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사정도 때에 따라  자주 변합니다.
그러니, 내 속도 내가 모르는데, 보여주기 원하지 않는 남의 속까지 궁금해 할..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말이지요..
이런 이유로, 차갑다는 말도 솔찮게 듣기는 했지만 그 생각은 아직도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자신과 어떤 통로를 공유하고 있어 편하고 안전하게 느껴진다면 때로 스스로 그 속을 드러내고 싶어지기도 하니까, 정말 상대를 아끼는 친구는 곁을 지키되 기다려주어야 하지 않을까..싶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숨겨놓아 보이지 않는 동굴이 있다.
때로는 그 동굴이 너무 깊어, 숨긴 그 자신조차 찾아내지 못하는 그런 동굴이
있다.>



profile

소현

December 23, 2009

글 쓰신 마지막 괄호가 이병률 시인의 '기억의 집'도 생각나게 하네요. 무척 좋아하는 시에요. 동굴, 그 안에 자꾸 누군가 불을 지피워 주곤 하는 것 참 고마운 일이죠....^^ 오래 꺼져 있는 적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착한 시풍경'도 그런 의미에서 정말 좋아합니다. 항상 잘 보고 있어요^^
profile

보시리

December 23, 2009

...ㅎㅎㅎ...
아직 이병률 시인의 글은 만나 볼 기회를 갖지 못한 연고로다가~~..
제가 (선택적)드라마광인이다보니 드라마에서 많이 인용을 합니다.
그런데, 참.. 써놓지 않아서 어디서 베낀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마침, 그 시도 '기억의 집'이라 하시니.. ^^
그 드라마 작가께서 좋아라하시는 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격려해주셔서.
아주 힘이 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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