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Mar, 2010

서안나 - 동백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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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아가씨


  야야 장사이기 노래 쪼까 틀어봐라이
  그이가 목청하나는 타고난 넘이지라
  동백 아가씨 틀어 불면
  농협 빚도 니 애비 오입질도 암 것도 아니여
  뻘건 동백꽃 후두둑 떨어지듯
  참지름 맹키로 용서가 되불지이

  백 여시같은 그 가시내도
  행님 행님 하믄서 앵겨붙으면
  가끔은 이뻐보여야
  남정네 맘 한 쪽은 내삘 줄 알게되면
  세상 읽을 줄 알게 되는 거시구만

  평생 농사지어봐야
  남는 건 주름허고 빚이제
  비오면 장땡이고
  햇빛나믄 감사해부러
  곡식 알맹이서 땀 냄새가 나불지
  우리사 땅 파먹고 사는 무지랭이들잉께
  땅은 절대 사람 버리고 떠나질 않제
  암만 서방보다 낫제

  장사이기 그 놈 쪼까 틀어보소
  사는 거시 벨것이간디
  저기 떨어지는 동백 좀 보소
  내 가심이 다 붉어져야

  시방 애비도 몰라보는 낮술 한 잔 하고 있소
  서방도 부처도 다 잊어불라요
  야야 장사이기 크게 틀어봐라이
  장사이기가 오늘은 내 서방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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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이기가 무엇이간디.. 이 서룬 마음에게 '사는 거시 벨것이간디' 라는 턱읍는 배짱을
내지르게 하는지.
온통 말이 안되는 벨 것들만 늘어놓으며 속에서 꿈틀거리는 속사정들을 주질러 앉힙니다..
사는 거시, 요렇게나 벨 것인디..

내 속사정은 내 속에 있을 때라야 비로소 속사정인가 싶습니다.
일단, 내 속에서 뛰쳐나갈 적에 위치에너지 변동으로 푸시시푸시시 열꽃을 잃고,
너미 귀에 들어갈 적에 또 한번 껍질이 까이면서 속사정의 아린 맛을 그만 놓쳐버립니다.

독대하여 자작하는 술잔에나 겨우, 내 속사정은 그 시커먼 속내를
조금 유지할 지도 모르겠네요, 이 장사이기를 걸고넘어지는 아낙의 속처럼..

사람은 약한 종족입니다.
아니, 때로는 악한 종족입니다,
그 찐득거리는 흔적을 평생을 걸려 지우려해도 충분하지 않을 만큼 때로는 잔인하고
때로는 비겁합니다. 어쩌면.. 그 잔인한 마음의 배후에는 꽁꽁 숨겨놓은 새까만 두려움이
있을지 모릅니다.
오랫동안 마음바닥에 눌어붙어온 두려움이 칼날처럼 퍼렇게 벼려지고,
혹여 그 두려운 곳으로 다시 떨어질까 무서워서, 또는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내 주변에
더 지독해지는지도 모릅니다. 그 맥은 그렇게 다음, 또 사람으로 이어져 악순환을
이룰 수도 있을 겁니다.


어느 병원 앞의 게시판에 적혀있다던 글에 대해 보았습니다.
  '전갈에 물렸던 분이 여기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하루만에 나아서 퇴원 하였습니다.'

또 다른 게시판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뱀에 물렸습니다.
   그 분은 치료를 받고 3 일만에 건강한 몸으로 퇴원했습니다.'

셋째 게시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미친 개에게 물려 현재 10일 동안 치료를 받고
   있는데 곧 나아서 퇴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넷째 게시판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이 인간에게 물렸습니다.
   그 후 여러 주일이 지났지만 그 분은 무의식 상태에 있으며.
   회복할 가망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어떻게든 내 선에서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사이기 노랫자락에 얹으면 혹 어찌 될까나..
그의 노래, 찔레꽃을 쓰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록 열 몇 번이나 직업을 바꾸며 전전하다가, 도무지 더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낙담에 빠져있던 무렵, 오월의 봄빛은 뜨락을 감도는데
그의 마음은 아직 동토의 언 땅처럼 죽고싶다는 절망에 묶여 있었습니다.
명랑한 빛 보기조차 싫어 눈을 감고 있는데 어디에서인가.. 향기가 흘러왔습니다..
저도 모르고 눈을 떠 얼굴을 톨리고 찾아볼 만큼, 아주.. 향기로운 이 내음.

그가 마당에 내려서서 둘러보았을 때, 마당 가에 피어있는 붉은 장미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 그래 그렇지. 역시 꽃 중의 꽃인 장미향이었구나..

막상 장미꽃에 다가가 향기를 맡은 그는 장미의 향기도 좋지만 그러나 그것은
그가 찾던 향기는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럼 무엇이지?
그 장미꽃 가지를 밀어내니 그 뒤에 숨겨져 하얀 꽃을 소심스레 피우고 있는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모양은 장미꽃과 비슷하고 가시도 있지만, 그것은 장미에 비해
훨씬 소박하고 작은 꽃이었는데, 그 향기는 장미에 가려 눈에 띄지도 않는, 바로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찔레꽃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갑자기 가슴이 막혀오며 눈물이 치솟아.. 아주 목놓아 울었다고
했습니다

“ 찔레꽃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세상에 나왔다면 먹고 사는 건 기본 아닐까.  
모든 식물도 꽃을 피우는데. 우리 사람들도 먹고 사는 일 말고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하지 않나. 그게 바로 세상에 나온 이유 아닐까.
먹고 사는 궁리만 하느라 아무 것도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슬프더군요.
그 때 깨달았습니다.
어머니 탯줄을 부여잡고 나온 이상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도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빙 둘러오긴 했지만, 저는 인생에 노래라는 집을 차곡차곡 짓고 있었어요.
아버지의 음악을 듣고 시골의 정서를 담았고. 군대에서 힘든 훈련을 받았고.
직장생활 하면서 넘어지고 깨지면서 세상을 배웠어요. 다시 국악을 접하고.
저는 그것들이 탄탄한 벽돌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런 길을 돌아왔던 장사익이기에..그의 소리에 담긴 마음이 또 이런 아낙에게
위로가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네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네가 울면 너는 혼자다..' 라는 속담도 있다지만,
저는 그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웃음도, 눈물도.. 보기에 따라 우리를 자라게 하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 어떤 쓰린 눈물 속에서 그동안 찔레꽃처럼 숨어 향기를 전하던 분이 보였어요..

울고 싶을 땐 울 겁니다.
사는 거시 벨것이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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