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Jul, 2006

8. 꽃들은 정말 모순 투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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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은 자기의 가시 네 개를 어린 왕자에게 보이며 이런 말을 했다.
"호랑이들이 발톱을 세워 덤벼들지도 몰라!"
"이 별에는 호랑이가 없어. 또 호랑이는 풀 같은 것은 먹지 않아."
어린 왕자가 반박했다.

"난 풀이 아니야." 꽃이 상냥하게 대답했다.
"미안해…"
"호랑이 따윈 괜찮아. 하지만 그래도 바람은 끔찍해.
혹시 바람막이 가진 것 없어요?"

`바람에 날려갈까봐 겁이 난다고~? 식물치고는 참 안된 일이겠구나.'
어린 왕자는 이 일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 꽃은 성격이 정말 까다로워… '

"저녁엔 유리 덮개를 씌워줘. 이 별은 너무 추워.
설비가 엉망이잖아. 내가 떠나온 곳은…"
그러나 꽃은 말을 그쳤다.
이 곳에 올 때 꽃은 씨였으니, 다른 세계를 결코 알 턱이 없다.
그런 순진한 거짓말을 하다가 들킨 게 부끄러워 꽃은 잘못을 어린 왕자에게
뒤집어 씌우려고 기침을 두세 번 했다.

"바람막이는 어디 있어?"
"막 찾으러 가는데 네가 말을 꺼내서…"
꽃은 어찌 됐든 어린 왕자를 후회하도록 만들려고 억지로 기침을 했다.
어린 왕자는 착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그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곧 그 꽃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 사소하게 오간 말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러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꽃의 말을 듣는 게 아니었어."
어느 날 그는 속마음을 내게 털어놓았다.

"꽃의 말을 그대로 들어서는 안 돼. 바라보면서 그냥 향기를 맡아야지.
꽃은 내 별을 향기롭게 해 주었는데 나는 그걸 즐길 줄 몰랐어.
발톱 이야기에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계속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때 난 아무 것도 이해를 못했어~!
꽃이 하던 말이 아니라 그의 행동으로 생각해야 했는데…
꽃은 나를 향기롭게 해 주고 내 마음을 밝게 해 주었어.
거기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 어설픈 거짓말 뒤에 따뜻한 마음이 숨어 있는 걸 눈치채야 했어…
꽃들은 정말 모순 투성이야!
하지만 그 꽃을 사랑하기엔 나 역시도 너무 어렸어.."

나는 그가 철새 떼의 이동을 이용해 그 별을 빠져 나왔으리라 생각한다.
떠나는 날 아침 그는 별을 깨끗이 정리했다. 특히 활화산을 정성 들여 청소했다.
그 별엔 활화산이 두 개 있었는데 아침밥을 데우기에 무척 좋았다.
사화산도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화산도 똑같이 깨끗하게 청소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서이다. 청소만 제 때 해 주면 화산은 서서히 규칙적으로
타오르고 갑자기 폭발하지 않는다. 화산 폭발은 굴뚝의 화재 같은 것이다.

물론 지구 위 사는 우리는 너무 작아 화산을 청소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화산 폭발이라는 곤란을 겪는 것이다.

어린 왕자는 쓸쓸한 마음으로 최근 솟아오른 바오밥 나무의 싹도 뽑았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에 익은 그 모든 일이 그날 아침엔 유난히 정답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꽃에 물을 주고, 유리 덮개를 씌워 주려고 할 때..
그는 울고 싶었다.

"잘 있어." 그는 꽃에게 말했다.
그러나 꽃은 대답하지 않았다.
"잘 있어." 그는 되풀이했다.
꽃은 기침을 했다. 그러나 감기 때문은 아니었다.

"내가 바보였어." 이윽고 꽃이 말했다.
"용서해줘. 부디 행복하게 지내…"
꽃이 비난을 퍼붓지 않아 그는 놀랐다.
유리 덮개를 쳐들고 그는 멍하게 서 있었다.
이렇게 다소곳하고 다정한 모습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 난 너를 사랑해." 꽃이 말했다.
"넌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어, 내 잘못이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너도 나만큼 바보였어.
부디 행복해… 그 유리 덮개는 그냥 두고, 이젠 필요 없어."
"하지만 바람이…"
"나는 그렇게 감기에 잘 걸리지는 않아.
시원한 밤바람이 더 좋을 거야. 난 꽃이니까."
"하지만 짐승들이…"
"나비를 보려면 벌레 두세 마리는 견뎌야지. 나비는 참 아름다워.
유리 덮개를 씌워두면 누가 날 찾아오겠어? 너는 멀리 가 있고…
커다란 짐승이 와도 난 겁나지 않아. 나한텐 발톱이 있잖아? "
그녀는 순진하게 가시 네 개를 내보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렇게 꾸물거리지 말아. 자꾸 신경이 쓰여.
떠나기로 결심했잖아. 어서 가."
꽃은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꽃은 그렇게 오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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