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Aug, 2006

노작가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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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eiltes Echo auf Grass' Mitgliedschaft bei der Waffen-SS
Günter Grass auf einem Archivfoto vom 28.10.2005.
Hamburg - Das Bekenntnis von Literatur-Nobelpreisträger Günter Grass, am Ende des Zweiten Weltkriegs Mitglied der Waffen-SS gewesen zu sein, hat ein geteiltes Echo gefunden. Kritik wurde am späten Zeitpunkt der Offenlegung laut, in der Frage seiner moralischen Glaubwürdigkeit stärkten Schriftsteller-Kollegen dem 78- Jährigen aber den Rücken.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며 독일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손 꼽히는 작가 귄터 그라쓰가
78세의 나이에, 자신이 열 일곱살이었을 때 독일 나치  무장친위대의 병사로 몇 달간
복역했다는 사실을 고백해서 독일의 지식층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구월 초 그의 에세이집 "Beim Häuten der Zwiebel"<양파껍질을 벗기면서>의 출판을
계기로한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과 인터뷰에서  복역사실을 시인했다고
합니다.

복역을 지원했을 당시에는 열 일곱살의 나이로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으며, 엘리트의
길이라고 여겼답니다.
후일에 그것이 오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급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귄터 그라쓰의 고백이 큰 물의를 일으키는 이유는, 귄터 그라쓰가 작가로서는
항상 정치적인 위치를 선점해오면서 자신의 도덕률로 다른 작가들을 상당히 엄중하게
비판해 왔기 때문입니다.

<너무 늦었다>,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왜 지금까지 침묵해 왔느냐?>에서 부터,
<지금이라도 고백해서 존경스럽다>, <죽을 때 까지 고백않고 무덤으로 안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작품과 작가의 생은 구분해야한다>등의 변호조까지 각 계의 반응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의 작품은 별도로 치더라도, 그의 정치적 발언은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기사들을 읽으면서, 독일인들의 과거청산 태도가 전후 우리나라 친일파들의
태도와 일본인들의 태도와 너무나 선명하게 대조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기까지가 독일에 있는 제 친구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작가 귄터 그라쓰가 잘했다 못했다는 판단을 하기 전에, 그가 불과 17세 였다는 것.
그 미성숙한 삶의 과도기에서 설정한 세계관으로 인해 60년간이라는 긴 시간을  고
통속에서 괴로와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왔습니다.

어젯밤에, 아주 오래된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를 드디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보고싶어 했으면서도, 막상 구입한 DVD를 받고서 왜 한달이 넘도록 볼 수
없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무의식이 차단하고 있었던 겁니다.
무심코 보기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들 때문이었다는 걸 잊은 거지요.

영화는, 2차 세계 대전이라는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진 네 명의 사람(가족)들이 겪게
되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 깊은 상처. 아픔 등을 그린 연작입니다.
누레예프, 글렌 밀러, 에디뜨 삐아프, 카라얀 등.

그 중의 에피소드 하나.

카라얀은 2차 대전에 군에 징집되었는데(15세에서 55세까지 징집되었읍니다.),
그가 1938년에 성공리에 마쳤던 콘서트의 공으로, 나치군의 군악대 대장으로
복무합니다.

종전 후,어렵사리 음악계로 복귀한 카라얀이 미국 순회공연을 시작했을 때
유례없는 <매진>이라는 기록을 놓고 기뻐하는데, 연주회 당일에 커튼이 열렸을 때
관람석에는 단 두명, 평론 기자가 앉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은 <준비가 다 되었다>면서, 콘서트를 마칩니다.
미미한 박수와 함께 위에서 뿌려지는 하얀 종이 꽃들, 그것은 카라얀이 히틀러와
악수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기자회견에서.

추궁하는 질문세례 속에 그는 대답합니다.
< 나는, 나의 조국에 대한 의무를 한 것이다. 독일군대를 게슈타포와 혼동하지
말아달라.>

빈약해보이는 대답일 수도 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 역시 아닙니다.

에디뜨 삐아프의 어머니 역시, 당대의 인기있는 가수로, 침공해온 독일군 장교
클럽에서 노래를 했었다는 것, 그리고, 그 후에는 연합군, 미군들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이유로, 지조없는, 참...말로 표현하기 난해불가한 말을 판자에 써서 목에
걸리우고, 머리를 삭발 당하고 개 끌리듯 파리의 거리를 끌려 다녀야 했습니다..
돌팔매 속에.

전쟁은~,
사람의 몸을 죽일 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짓밟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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