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Jul, 2006

7. 단 한 송이 밖에 없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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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정말 무척 화가 나 있었다.
황금 빛 머리칼이 바람에 마구 흔들렸다.

" 내가 아는 어느 별에 얼굴이 시뻘건 어른이 살고 있어.
그 사람은 꽃 한 송이 향기를 맡은 적도 없고,
별 하나 바라본 적도 없고, 누구 한 사람 사랑해 본 적도 없어.
덧셈 밖에는 다른 일을 한 적이 없어.
그리고 하루종일 아저씨 같은 말만 되풀이하지.
'나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라며 으스대거든.
 하지만 그건 사람이 아니야, 그건.. 버섯이야!"

"뭐라구?"
"버-섯-이라구!"
어린 왕자는 이제 너무나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백만 년 전부터 꽃들은 가시를 만들어 왔어.
수백만 년 전부터 양은 그 꽃들을 먹어 왔구.
꽃들이 아무 소용도 없는 가시를 만드느라 그렇게
고생하는 이유가 중요하지 않단 말이야?
양과 꽃들의 전쟁은 중요하지 않아?
그 뚱뚱하고 시뻘건 어른의 덧셈보다 더 중요하고 진지하지 않다고?

내 별 아니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세상에 단 한 송이뿐인 꽃을 생각해봐.
어느 날 아침 조그만 양이 멋도 모르고 단숨에
먹어버릴지 모르는 그 꽃을 내가 사랑한다는 게..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그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을 계속했다.

"수백만 개가 넘는 별들 가운데 단 한 송이밖에 없는 꽃을 누군가 사랑한다면
그 사람은 별들을 쳐다보기만 해도 행복할 거야.
'저 하늘 어딘가에 내 꽃이 있어…'
혼자서 이렇게 말하겠지.
그런데 양이 그 꽃을 먹어 버리면 어떻게 되지?
그에겐 그 모든 별들이 갑자기 불이 꺼져 버리는 거야!
그런데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갑자기 흐느껴 울었다. 어둠이 깔려 있다.

나는 연장을 던져버렸다. 망치도 나사도 목마름도 죽음도 상관없다.
이 우주 안의 어느 별, 어느 행성에, 나의 별 바로 이 지구 위에
내가 달래주어야 하는 어린 왕자가 있다..
나는 그를 감싸 안았다. 조용히 흔들어 달랬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사랑하는 그 꽃은 이제 위험하지 않아…
양의 입에 씌울 입 가리개를 그려 줄게…
네 꽃을 감쌀 갑옷도 그려 주지… 내가…"

나는 더 이상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난 아주 서툴렀다, 어떻게 해야 그를 달랠 수 있을지,
어떻게 다가가야 그의 마음에 닿을 수 있을지… 나는 정말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의 나라는, 그렇게도 신비롭다.

나는 곧 그의 꽃을 잘 알게 되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전에도 아주 수수한 꽃들이 있었다.
홑꽃잎을 한 이 꽃들은 큰 자리를 차지하지도 않고,
누구의 마음을 설레게 하지도 않았다.
어느 날 아침 풀 속에 피어났다가 저녁이면 조용히 사그러들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씨앗 하나가 날아와 어느 날 싹이 텄다.
어린 왕자는 다른 싹과 비슷하지 않은 이 어린 나무를 가까이서 살펴봤다.
새로운 종류의 바오밥 나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나무는 더 이상 자라지 않고, 꽃을 피울 준비를 했다.
어린 왕자는 커다란 꽃망울을 지켜보며 곧 기적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꽃은 그 초록의 방에 숨어 계속 아름다움을 가꾸고 있었다.
정성 들여 색깔을 골랐다.
꽃은 천천히 옷을 입고 꽃잎을 하나하나 가다듬었다.
그 꽃은 개양귀비처럼 아무렇게나 차리고 나타나지 않았다.
아름다운 빛이 흘러 넘칠 때 비로소 나타나고 싶었다.
그래~! 정말 눈부시게 콧대높은 꽃이었어!

신비로운 화장은 몇 날 며칠이 걸렸다.
드디어 어느 날 아침 해가 뜰 바로 그 무렵 꽃은 모습을 드러냈다.
꽃은 꼼꼼하게 화장을 했으면서도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아! 이제 겨우 일어났어… 미안해… 머리도 온통 헝클어지고…"
그러나 어린 왕자는 감탄을 억누를 수 없었다.

"너무 아름다워."
"그래요?"
꽃이 속삭이듯 부드럽게 대답했다.
"난 햇님이 태어날 때 함께 태어났어…"

어린 왕자는 그 꽃이 별로 겸손하지 못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러나 이렇게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이 또 있을까?
꽃은 말을 이었다.

"지금 아침식사 시간 아닌가요? 친절을 좀 베풀어 주시겠어요?"

어린 왕자는 어쩔 줄 모르며 물뿌리개에 시원한 물을 담아다 꽃의 시중을 들었다.
꽃은 이런 허영심으로 그를 곧잘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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