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Oct, 2007

아버지 이야기

보시리 조회 수 6381 추천 수 0 목록

This is a wonderful piece by Michael Gartner, editor of newspapers large and small

and president of NBC News. In 1997, he won the  Pulitzer Prize for editorial

writing.

It is well worth reading, and a few good chuckles are guaranteed.

Enjoy.

 

이 글은, 여러 크고 작은 신문의 편집인이있고, NBC News의 사장직을 역임하였으며,

1997년에는 편집부문에서 퓰리쳐 상을 수상한 마이클 가트너의 글입니다.

읽어내려가는 동안, 뭉클한 감동과 함께 사이사이 따스한 웃음을 여러분에게 선사하리라

믿습니다.

 

My father never drove a car. Well, that's not quite right.

I should say I never saw him drive a car.

He quit driving in 1927, when he was 25 years old, and the last car he drove

was a 1926 Whippet.

"In those days," he told me when he was in his 90s, "to drive a car you had to

do things with your hands, and do things with your feet, and look every which

way, and I decided you could walk through life and enjoy it or drive through

life and miss it."

At which point my mother, a sometimes salty Irishwoman, chimed in:

 "Oh, bull----!" she said.

"He hit a horse."

"Well," my father said, "there was that, too."


  나의 아버지는 운전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아니, 그건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가 운전하는 것을 내가 한번도 본 일이 없다고 해야 맞을 겁니다.

아버지는 1927년, 그가 25세였을 때 운전을 그만두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몰았던 차는

1926년형 Whippet 였습니다.

 

 "그땐 말이지.." 아버지가 90세가 넘은 후에 내게 하신 말입니다.

"차를 운전하려면 모든 걸 손으로 일일히 해야 했거든, 발로도 뭔가를 해야했고, 온 사방을

두루두루 잘 봐야 했었어. 그래서 결심한거라구. 인생은 차분히 걸어다니면서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말이지, 인생을 차로 쑤욱~지나쳐버리면서 놓치는 것보다 말이야."

 

 그 시점이 되면, 깐깐하고 날카로운 아이리쉬인의 피를 이어받은 어머니가 끼어들기를 합니다.

"흥~,웃기시네요. 너네 아버지, 그때 말을 한마리 들이받고나서 그 이후로 운전을 그만

뒀다는 거 아니냐~!"

"뭐.. 그것도 그랬구." 아버지는 순순히 시인합니다.


  So my brother and I grew up in a household without a car. The neighbors

all had cars -- the Kollingses next door had a green 1941 Dodge,

the VanLaninghams across the street a gray 1936 Plymouth, the Hopsons

two doors down a black 1941 Ford -- but we had none.


  덕분에 나와 나의 형은 차가 없는 집에서 자라났습니다. 이웃들은 모두 차를 가지고 있었

습니다. 콜링스씨네는 녹색 1941년형 닷지가, 길 건너편 반 래닝햄씨네는 1936년형 회색

플리머스가, 두집 아래 홉슨씨네는 1941년형 검은 색 포드가 있었습니다, 우리집만 빼고.


  My father, a newspaperman in Des Moines, would take the streetcar to work

and, often as not, walk the 3 miles home. If he took the streetcar home,

my mother and brother and I would walk the three blocks to the street

-car stop, meet him and walk home together.


  디모인의 한 신문사에서 일하던 아버지는 그래서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드물게는

한 3마일의 거리를 걸어서 퇴근했습니다. 아버지가 만약 버스를 이용하는 경우, 어머니와

형과 나는 버스 정류장으로 아버지를 마중나가서 기다리다가 함께 걸어 돌아오곤 했습니다.


  My brother, David, was born in 1935, and I was born in 1938, and sometimes,

at dinner, we'd ask how come all the neighbors had cars but we had none.

"No one in the family drives," my mother would explain, and that was that.


  형인 데이빗은 1935년에 태어났고, 나는 1938년에 태어났습니다. 가끔 저녁식탁에서

우리는 아버지에게 묻곤 했습니다. 왜 이웃 집집마다 모두 가지고 있는 차가 우리집에만

없는 거냐고 말이지요.

"우리집에는 운전하는 사람이 없잖니." 어머니는 늘 그렇게 대답해주고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But, sometimes, my father would say, "But as soon as one of you boys turns

16, we'll get one."

It was as if he wasn't sure which one of us would turn 16 first.

But, sure enough, my brother turned 16 before I did, so in 1951 my parents

bought a used 1950 Chevrolet from a friend who ran the parts depart

-ment at a Chevy dealership downtown.

It was a four-door, white model, stick shift, fender skirts, loaded with every

-thing, and, since my parents didn't drive, it more or less became my brother's

car.


  간혹가다가 아버지는 이렇게 덧붙여 말하기도 했습니다.

"너희 중 아무나 먼저 16살이 되면 그러면 우리도 차를 사기로 하자."

마치, 우리중 누가 먼저 16살이 되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지요.

 

물론, 당연히 형이 나보나 먼저 16살이 되었고, 드디어 1951년, 부모님은 시내 셰비 딜러샾에서

파트부를 운영하는 친구에게서 1950년형 중고 시보레를  구입했습니다.

4 door, 흰색 모델에, 기어변속이고, 뒷바퀴커버등등을 고루 갖춘 차였는데, 부모님이

모두 운전을 안하는 상황상 그 차는 결국 형의 전용차처럼 되었습니다.


  Having a car but not being able to drive didn't bother my father, but it didn't

make sense to my mother.

So in 1952, when she was 43 years old, she asked a friend to teach her to drive.

She learned in a nearby cemetery, the place where I learned to drive the

following year and where, a generation later, I took my two sons to practice

driving. The cemetery probably was my father's idea.

"Who can your mother hurt in the cemetery?"

I remember him saying more than once.


  차가 있음에도 운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전~혀 부담을 갖지 않던 아버지와는 달리, 어머니는

점차 그것이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952년, 어머니가 43세 되던 해에 어머니는 친구에게 운전을 가르쳐달라고 부탁을

했고, 근처의 공동묘지에서 연습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 다음 해에 내가 운전을 배웠고,

같은 곳에서 다음세대인 우리 두 아들들도 운전을 배웠습니다.

그 공동묘지에서의 운전연습은 아마도  아버지의 아이디어였을 것입니다.

"도대체, 묘지에서 누구를 치겠냔 말이다."

아버지가 그 말을 하는 것을 적어도 두 번 이상은 들은 것 같습니다.


  For the next 45 years or so, until she was 90, my mother was the  driver

in the family.

Neither she nor my father had any sense of direction, but he loaded up on maps -

- though they seldom left  the city limits -- and appointed himself navigator.

It seemed to work.


  그 이후로 45년동안, 어머니가 90세 되던 해까지 어머니는 집안의 운전사였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나 두 분 모두 길치였음에도, 그리고, 그 동네 경계를 벗어나는 일이란 것은

극히 드물었음에도 아버지는 늘 차 안에 지도들을 쌓아두었고, 자신을 navigator , 길잡이

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럭저럭 그 모습은 유지가 되었습니다.


  Still, they both continued to walk a lot. My mother was a devout Catholic,

and my father an equally devout agnostic, an arrangement that didn't seem

to bother either of them through their 75 years of marriage.

(Yes, 75 years, and they were deeply in love the entire time.)


  그럼에도 두 사람은 정말 많이 걸어 다녔습니다. 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고, 아버지는

딱 그만큼 독실한 무신론자였는데, 그 상황이 전혀 두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75년의

결혼생활을 통틀어도 장애가 되는 구석은 없어 보였습니다.

 

(네. 75년입니다. 그 75년 내내, 그 두 사람은 서로를 지극히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He retired when he was 70, and nearly every morning for the next 20 years

or so, he would walk with her the mile to St. Augustin's Church.

She would walk down and sit in the front pew, and he would wait in the back

until he saw which of the parish's two priests was on duty that morning.

If it was the pastor, my father then would go out and take a 2-mile walk,

meeting my mother at the end of the service and walking her home.

If it was the assistant pastor, he'd take just a 1-mile walk and then  head

back to the church.

He called the priests "Father Fast" and  "Father Slow."

 

  아버지는 70세에 은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거의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성어거스틴 교회까지 걸어갔습니다. 어머니는 본당안으로 들어가 제일 앞자리에

앉았고, 아버지는 제일 뒷줄에 앉아, 그날 누가 강론할 차례인가를 기다렸습니다. 

만약 본당신부님이면 아버지는 2 마일 산책을 나갔고, 돌아와서 어머니를 만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만약 강론담당이 보좌신부님이라면 1 마일 산책으로 짧게 마치고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사제들을 "Father Fast" 와  "Father Slow."로 불렀지요.


  After he retired, my father almost always accompanied my mother whenever

she drove anywhere, even if he had no reason to go along.

 If she were going to the beauty parlor, he'd sit in the car and read, or go take

a stroll or, if it was summer, have her keep the engine running so he could

listen to the Cubs game on the radio. In the evening, then, when I'd stop by,

he'd explain:

"The Cubs lost again.  The millionaire on second base made a bad throw

to the millionaire on first base, so the multimillionaire on third base scored."


  은퇴후 아버지는 그렇게 어머니가 어딜 가든 동행을 했습니다, 본인이 볼 일이 없어도 상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미용실에 가면 아버지는 차 안에 앉아 책을 읽거나 주변을 산책하기도 하고,

여름이라면 차 시동을 켜놓고 야구중계를 듣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저녁에 잠깐 집에 들르니, 이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 (시카고) 컵스가 또 졌다.  2루에 있던 떼부자가, 바보같이 1루에 있는 떼부자에게

던지는 바람에, 3루에 있던 multimillionaire 벼락부자가 점수를 내버렸거든~! "


  If she were going to the grocery store, he would go along to carry the bags out

 -- and to make sure she loaded up on ice cream. As I said, he was

always

the navigator, and once, when he was 95 and she was 88 and still driving,

he said to me, "Do you want to know the secret of a long life?"


  만약 어머니가 식료품가게엘 가면 아버지는 백을 나르면서 또, 아이스크림도 빼놓지 않았는

지를 점검합니다.

 

 아버지가 95세, 어머니가 88세였던 어느 날, 그때까지 아직도 어머니는 운전을 하고 있었고,

앞에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는 계속 길잡이 노릇을 했는데, 뜬금없이 내게 물었습니다.

 

"너, 나처럼 장수하는 비결을 알고싶냐?"


"I guess so," I said, knowing it probably would be something bizarre.


"No left turns," he said.

"What?" I asked.


"글쎄요, 아마두요." 틀림없이 희한한 대답이 나올 것이라는 걸 알고 하는 말입니다.

 

"좌회전을 안하는 거다."

 

"네..?"


"No left turns," he repeated.

"Several years ago, your mother and I read an article that said most accidents

that old people are in happen when they turn left in front of oncoming traffic.

As you get older, your eyesight worsens, and you can lose your depth perception,

 it said. So your mother and I decided never again to make a left turn."

"What?" I said again.


  "좌회전을 안하는 거라니까." 아버지는 강조하듯 반복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느 글을 본 일이 있거든, 거기서 그러더라구. 노인들에게 발생하는 교통사고의

대부분이 비보호 좌회전때 일어난다는 거야. 나이가 들면 시력이 떨어지고 공간감각이 나빠

진다는 거였어. 그래서 그때 어머니랑 결정을 봤다. 앞으론 좌회전을 하지 말자고 말이지."

 

"네에~?"


  "No left turns," he said. "Think about it. Three rights are the same  as a left,

and that's a lot safer.

So we always make three rights."


  "No left turn." 아버지는 다시한번 강조를 했습니다.

"생각해봐라. 우회전 세 번은 좌회전 한 번과 같잖니. 게다가 훨씬 안전하고 말이지.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회전을 세번 해서 간다."


  "You're kidding!" I said, and I turned to my mother for support.

"No," she said, "your father is right. We make three rights. It works."

 But then she added:

 "Except when your father loses count."

I was driving at the time, and I almost drove off the road as I started laughing.

"Loses count?"  I asked.


  "설마.. 농담이시겠지요? " 나는 동의를 구하며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버지 말씀이 맞다. 언제나 우회전 세번을 해. 그거 괜찮은 방법이야...

아버지가 숫자를 놓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때는 내가 운전중이었는데, 갑자기 웃음보가 터지는 바람에 하마트면 길 밖으로 빠질 뻔

했습니다.

"숫자를 놓친다구요?"


  "Yes," my father admitted, "that sometimes happens. But it's not a problem.

You just make seven rights, and you're okay again."

I couldn't resist. "Do you ever go for 11?" I asked.


  "그래.." 아버지가 시인을 합니다.

"가끔 그런 일이 생기드라구. 하지만 뭐, 그래봐야 별 일 아니야. 그냥.., 우회전 일곱번만

돌아주면 문제해결되니까 말야."

 

도무지 못참고 내가 질문을 합니다.

"그래서.. 11번 도신 적은 없어요?"

 

  "No," he said,

" If we miss it at seven, we just come home and call it a bad day.

Besides, nothing in life is so import!!!ant it can't be put  off another day or

another week."


  "아니~, 만약, 일곱 번 돌면서 또 헷갈리면 그냥 집에 와, 그리고는 '에~라, 일진 나쁜 날~'

그러고 말아.

아무튼, 세상에 말이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하루나 일주일쯤 미루면 절~대로 안될 그렇게

중요한 일은 없는 거거든."


  My mother was never in an accident, but one evening she handed me her

car keys and said she had decided to quit driving. That was in 1999, when

she was 90.

She lived four more years, until 2003. My father died the next year, at 102.


  우리 어머니는 단 한번도 차사고를 내신 일이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 어머니는 느닷없이 내게 차열쇠를 넘겨주고는 이제 운전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어머니가 90세 되던 1999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4년을 더 사시고 2003년에, 아버지는 그 다음해에 102세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They both died in the bungalow they had moved into in 1937 and bought

a few years later for $3,000.

(Sixty years later, my brother and I paid $8,000 to have a shower put in the

tiny bathroom -- the house had never had one.

My father would have died then and there if he knew the shower cost

nearly

three times what he paid for the house.)


  두 분은, 1937년에 이사를 들어간 작은 단층집을 몇 년 후에 3000불 주고 샀었는데,

그 집에서 두 분 모두 돌아가실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 집을 구입한지 60년 후, 나와 형이

8,000불의 돈을 내서 그 쪼그만 목욕탕에 샤워기를 달았습니다.

그때까지도 그 집에는 샤워기가 없었습니다.. 만약, 집 산 돈의 세배를 주고 샤워기 달았다는

사실을 아버지가 알았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가 왔을 겁니다..)


  He continued to walk daily -- he had me get him a treadmill when he was 101

 because he was afraid he'd fall on the icy sidewalks but wanted to keep

exercising -- and he was of sound mind and sound body until the moment

he died.


  아버지는 그 후로도 계속 걷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101세 되던 해에는

내게 트레드밀운동기구를 사다달라고 했습니다, 빙판길에 걷다가 넘어질 것을 염려해서였는데,

그럼에도 걷기를 그만두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One September afternoon in 2004, he and my son went with me when I had to

give a talk in a neighboring town, and it was clear to all three of us that he was

wearing out, though we had the usual wide-ranging conversation about politics

and newspapers and things in the news.


 

 2004년 9 월 어느 오후, 아버지와 나는 아들까지 데리고 옆 도시로 강연을 하러 갔습니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가 많이 피곤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늘 하듯이 광범위한 주제로, 정치나

신문기사등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A few weeks earlier, he had told my son, "You know, Mike, the first hundred

years are a lot easier than the second hundred."

At one point in our drive that Saturday, he said, "You know, I'm probably

not going to live much longer."

 

"You're probably right," I said.

 

"Why would you say that?" He countered, somewhat irritated. 

 

"Beause you're 102 years old," I said.

"Yes," he said, "you're right." He stayed in bed all the next day.


  그보다 몇 주 전에,아버지는 당신의 손자에게 말한 일이 있었습니다.

"있잖냐, 마이크. 첫 번째 100년이 두 번째 백년보다 훨씬 살기가 쉽구나.."

 

어쨌던, 그 드라이브에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말을 떼었습니다.

"암만해도, 앞으로 그리 오래 살 것 같지가 않다.."

 

"네.. 아버지 말씀이 맞을 것 같네요.."

"왜, 그렇게 말을 하냐?"

아버지는 슬쩍 신경 거슬려진 듯한 목소리로 되물었습니다.

 

"아버지 연세가 102세이시니까요~. "

"...그래, 니 말이 맞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아버지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That night, I suggested to my son and daughter that we sit up with  him

through the night.

He appreciated it, he said, though at one point, apparently seeing us look

gloomy, he said:

 

"I would like to make an announcement. No one in this room is dead yet"


  그날 밤, 나는 아들, 딸에게 할아버지 곁을 지키자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의 그런 모습을 고마와 했지만, 어느 시점에서 우리가 많이 슬퍼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광고 하나 하겠다. 지금 이 방에, 아직 죽은 사람 없다~!"


  An hour or so later, he spoke his last words:


그리고 한 시간 후,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말을 전했습니다.


  "I want you to know," he said, clearly and lucidly,

"that I am in no pain. I am very comfortable.

And I have had as happy a life as anyone on this earth could ever have."

A short time later, he died.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다."  명확하고 또렷한 소리였습니다.

"지금 난, 전혀 아픈 데가 없다, 그리고 너무 편하다.

 나는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았다."


  I miss him a lot, and I think about him a lot.

I've wondered now and then how it was that my family and I were so lucky

that he lived so long.

I can't figure out if it was because he walked through life, or because he quit

taking left turns.

Life is too short to wake up with regrets.

So love the people who treat you right.

Forget about the ones who don't.

Believe 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If you get a chance, take it.

 If it changes your life, let it.

Nobody said life would be easy, they just promised it would most

likely be worth it.

 

아버지가 많이 그립고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납니다.

가끔 놀랍니다. 나와 우리 가족이 어떻게 아버지와 그리 오랜 시간동안 함께 사는 축복을

가질 수 있던 걸까.

 

글쎄요.. 아버지 말씀대로 아버지가 운전대신 많이 걸어서 그런 것인지, 아님.. 좌회전을 포기해서

그런 것인지 말이지요.

 

후회하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여러분에게 잘 대해준 사람들과 언제나

서로 사랑하며 사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러지 않던 사람이 있다면 잊어버리십시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회가 오면, 잡으십시요.

만약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바꿔놓았다면, 받아들이십시요.

아무도, 살아가는 일이 쉽다고..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산다는 일은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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